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2010년대 초 시작된 ‘셰일 혁명’에 힘입어 세계 1위로 올라서고 있다. 미국의 중동에 대한 에너지 의존이 줄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이 상징하듯 미국의 고립주의가 한층 더 심화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이 최근 공개한 ‘월간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 자료를 보면, 2018년 1~10월 미국의 일평균 산유량은 1075.7만배럴을 기록했다. 1월에는 999.5만배럴이었지만, 10월에는 그보다 15.4% 많은 하루 1153.7만배럴까지 치솟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산유량은 러시아가 1157만배럴, 사우디아라비아는 1102만배럴이다. 러시아·사우디에 견줘 미국의 산유량 증가세가 가팔라, 전문가들은 올해 연간 기준으로 미국이 최대 산유국이 될 것으로 본다. 오펙은 미국 산유량이 올해 일평균 1300만배럴대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장기 추세를 봐도 미국의 산유량은 증가세가 뚜렷하다. 2000년대 내내 하루 500만배럴 수준이었는데 셰일 혁명 이후인 2013년 746.5만배럴, 2017년 936.0만배럴에 이어, 지난해 처음 1000만배럴을 넘겼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4일 미국 에너지정보국 자료와 업계 추정치에 근거해, 2017년 3월 미국 산유량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잇는 3위였지만 지난해 9월 1위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미국이 늦어도 2019년엔 러시아를 따돌리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은 지난해 2월 발간한 ‘연간 에너지 전망 2018’에서 “2022년엔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영국 에너지 기업 비피(BP)의 자료를 보면, 천연가스를 합친 에너지 생산량에선 미국이 2014년 이미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런 ‘혁명적’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2010년 이래의 셰일 혁명 때문이다. 셰일 오일은 혈암이라 불리는 단단한 퇴적층에 매장된 원유로 한동안 채굴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채굴법이 개발된 뒤, 2010년대 들어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 원유·천연가스 생산이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생산된 원유 가운데 70%가 셰일 오일이다.
이 같은 기술 혁명은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과 국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미국은 1960~70년대 3~4차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미국의 이익에 맞게 중동 정세를 안정화하는 것을 외교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1978년 중동전쟁의 도화선이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화해시킨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었고, 91년엔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을 격퇴한 1차 걸프 전쟁을 주도했다. 그러나 셰일 혁명 이후인 2015년 40년 만에 원유 수출을 허용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엔 시리아 철군, 아프가니스탄 감군 등의 정책을 쏟아내며 중동에서 한발 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