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차이나 리스크’가 세계 금융시장을 흔드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지난해 말 무역전쟁 ‘휴전’ 합의 뒤 처음으로 마주 앉는다. 애플의 실적 전망 하향과 주가 폭락으로 급부상한 ‘차이나 리스크’가 타협을 성사시키라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제프리 게리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이끄는 협상단이 오는 7~8일 베이징을 방문한다고 4일 밝혔다. 미-중은 올해 3월1일을 시한으로 무역전쟁 휴전을 선언하고 협상에 나서기로 한 상태다. 중국에서도 차관급이 나설 것으로 보이는 이번 협상은 탐색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일 애플이 중국 시장 부진을 이유로 실적 전망을 대폭 깎으면서 ‘차이나 리스크’가 부상한 상황에서 미-중의 협상 동향에 세계 금융시장의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증시가 급락한 3일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거래인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애플이 일으킨 파문은 3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 이어 4일 일본 증시를 강타했다. 이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2.83%, 에스앤피(S&P)500지수는 2.48%, 나스닥지수는 3.04% 떨어졌다. 지난해 10~12월의 매출 전망을 큰 폭 하향해 증시를 충격에 빠트린 애플의 주가는 9.96%나 폭락했다. 새해 거래 첫날인 4일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개장하기가 무섭게 3%대 폭락세를 보이다 2.26% 하락 마감하며 2만 선을 내줬다. 이날 금값은 온스당 1300달러에 근접하며 6개월여 만의 최고치에 다다랐다. 한달 전 3%가 붕괴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2.5%대까지 떨어졌다. 주가 하락, 미국 장기 국채 금리 하락, 금값 상승이라는 금융시장 불안의 3대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에서는 더 많은 자국 기업이 무역전쟁과 중국 시장 부진의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 본격적으로 나온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차이나 리스크를 떠안는 것은) 단지 애플만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가 (무역 협상에서) 거래를 성사시킬 때까지 중국에서 매출을 올리는 엄청난 수의 미국 기업이 수입 감소를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무역전쟁이 단기적으로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지만, 애플 사례는 미국 기업들의 “부수적 피해”가 본격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중국도 경기 둔화 조짐이 잇따르는 국면이라 협상 타결이 절실하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5%로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컨설팅 업체 조조고는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이 3% 감소하면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추산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4일 대형 은행은 14.5%, 중소형 은행은 12.5%인 지급준비율을 1%포인트씩 내린다고 발표했다. 8천억위안(약 130조원)가량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 하강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인민은행은 지난해에도 4차례 지준율을 내렸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감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중이 첫 ‘휴전 협상’에 나선다는 소식이 발표된 뒤 마감한 중국 증시의 상하이종합지수는 2.05% 올랐다. 상승세를 보이던 금값은 소폭 떨어지고 유가는 오르면서 협상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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