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럴당 100달러? 3차 석유 파동?
미국이 이란의 목줄을 죄려고 석유 금수 등 제재를 발효하자 석유시장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15개 회원국들 중 산유량이 3위인 이란이 세계시장에서 퇴출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두고 엇갈리는 전망이 나온다. 2차 석유 파동의 주역이 이란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대립이 세계 경제 전반에 끼칠 영향도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재 발효일인 5일 “우리는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를 가했지만, 국제 유가를 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석유는 다소 (전면 제재를) 늦추고 싶다”고 말했다. 또 “난 이란의 석유를 즉각 (세계시장에서) 제로로 만들고 싶지만, 그러면 시장에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중국·일본·인도·이탈리아·터키·그리스·대만에는 180일간 이란산 원유 수입을 허용하기로 한 조처가 대상국들의 사정을 고려하기보다는 유가 안정을 위한 것임을 확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미국이 이란의 원유를 주요 타격 대상으로 삼고서도 금수를 철저히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공급 불안과 가격 앙등 가능성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면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고, 휘발유 값 인상은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세계 경제 전반에 끼칠 악영향은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향하게 하고, 제재 전선에 파열음을 일으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때문에 이란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증산을 요구해왔다. <에이피>(AP) 통신은 역효과가 예상되는 “경제적 현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석유시장은 당장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 제재를 앞두고 상승하던 유가는 5일 제재 발효 직후 가격이 약간 내려 브렌트유는 배럴당 73달러, 서부텍사스유는 63달러선에서 거래됐다. 서부텍사스유는 한 달 전보다 10달러가량 낮다.
석유시장 반응이 미지근한 것은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8개국에 180일이라는 한시적 유예 기간을 준 것을 완전한 금수는 어렵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석유 수요가 많은 중국이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미 할인 가격을 적용받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으로서는 판로가 막힌 이란한테 더 싼값에 원유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제재에 대비해 수요자들이 이란산 수입을 줄여온 것도 연착륙의 배경이다.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지난해 초 하루 240만배럴에서 지금은 130만배럴로 줄었다. 사우디, 미국, 러시아 등이 생산을 늘리면서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산유량 감소를 벌충해왔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경착륙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석유시장 분석가 맷 바디알리는 이란이 내년에 세계시장에 공급할 원유 양이 제재 탓에 하루 90만배럴가량 추가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사우디 등의 증산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며 “세계 산유량을 하루 50만배럴씩 늘릴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이란이 석유시장에서 퇴장한다면 전체 공급량의 2~3%가량이 줄게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란이 호언한 대로 원유 물동량의 40%가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거나, 미-이란 대립의 결과로 중동의 다른 지역에서 대규모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다. 과거 고유가 파동이 이란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미국과 이란이 핵개발을 놓고 대립한 2011~2012년에 유가는 100달러선을 뚫었다. 1979년 2차 석유 파동은 유가를 또다시 급격히 올린 오펙이 촉발했고, 이란 이슬람혁명에 따른 공급 부족과 뒤이은 이란-이라크전이 심화시켰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