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전쟁’ 선언에 유럽연합(EU)이 보복관세를 준비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보복관세를 공언하면서 세계 무역 질서의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트위터 글에서 “유럽연합이 그곳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들에 이미 엄청나게 높은 관세와 장벽을 더 높이려고 한다면 우리도 미국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는 그들의 자동차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거기에서 우리 자동차 판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엄청난 무역적자!”라고 주장했다. 미국시장 점유율이 높은 베엠베(BMW),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유럽 브랜드를 겨냥해 관세(승용차는 2.5%, 픽업트럭은 25%)를 대폭 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는 전날에는 “무역 전쟁은 좋은 것이고, 이기기도 쉽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1일 수입 철강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뒤 유럽연합이 반발하자 재반격 성격으로 나온 것이다. 유럽연합은 오토바이 업체 할리 데이비슨, 위스키 업체 버번, 청바지 업체 리바이스 등 미국의 ‘상징적 브랜드’에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할리 데이비슨은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에서 생산되고, 버번 위스키는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의 지역구인 켄터키의 대표 상품이다. 유럽연합이 정치적 파장까지 계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쌀·옥수수·오렌지 등 미국산 농산물도 보복관세 대상으로 넣을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연합이 5일 100개 이상의 보복 대상 품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도 보복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장예쑤이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4일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면 방관하지 않고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기꺼이 추구한다고 밝힌 데다 세계 3대 경제권이 충돌 양상을 보이면서 한국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우려된다. 미국이 유럽산 자동차에 보복관세를 매기면 다른 경쟁국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확전으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대미 주력 수출 상품 1~4위인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자동차부품, 반도체 등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면 한국의 대중국 중간재 수출에 악영향이 갈 수 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 기반인 제조업 노동자와 산업계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며 무역적자 유발국을 대상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양희 대구대 교수(경제학)는 “유럽연합과 중국 등이 반발하고 우리 수출도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극단적 대립은 공멸을 불러올 수도 있어 국제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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