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닷컴 시대’를 연 스타였던 야후가 22년만에 사실상 종말을 맞이한다.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은 25일 검색과 이메일, 쇼핑, 뉴스 등 야후의 핵심사업을 48억3000만달러(5조49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야후는 매각 작업이 마무리되는 내년까지 존속하다, 이후 사명을 바꾸고 투자 회사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야후가 보유한 알리바바와 야후 재팬 주식 자산 400억달러는 이번 매각에서 제외된다.
야후는 한때 인터넷 포털을 상징하는 회사였다. 1994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생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제리와 데이비드의 월드와이드웹 안내’ 라는 이름으로 웹 디렉토리를 분류하는 사이트로 시작했다. 무료 이메일과 뉴스, 금융 정보 등을 한데 모아서 제공해 인터넷 초기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닷컴 버블이 절정에 이르렀던 2000년 1월 시가총액은 1250억달러(141조9000억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검색은 구글에 밀리고, 모바일에서는 페이스북에 뒤처지면서, 지난 22일 야후 시가총액은 전성기의 34%에 불과한 370억달러(42조24억원)로 쪼그라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야후 몰락의 원인은 정체성 혼란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짚었다. 지난 2006년 야후 수석 부사장이었던 브래드 갈링하우스는 식빵 위에 바른 땅콩 버터에 비유해 야후가 지나치게 넓은 분야에서 얇게 사업들을 펼쳐놓았다고 비판했다. 갈링하우스는 이 내부 메모에서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고 비판했다.
야후는 첫 최고경영자인 티머시 쿠글이 있을 때인 2000년 구글의 검색엔진을 채용해 2004년까지 사용했다. 야후는 구글을 인수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자체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쪽을 택했다. 구글은 검색엔진 향상에 집중했지만, 야후는 그렇지 않았다. 워너 브러더스 출신으로 두번째 최고경영자였던 테리 세멜은 야후를 미디어 회사로 이끌었다. 세멜이 최고경영자였던 2006년 야후는 이번에는 페이스북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최고 경영자로 돌아온 설립자 제리 양은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이번 인수가격의 9배가 넘는 450억달러에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제리 양 이후 최고경영자 칼 바르츠는 뉴스와 스포츠 콘텐츠를 강화하는 등 다시 야후를 미디어 회사처럼 운영해나갔다. 그러다 2012년에는 한국에서 네이버 등 토종 검색업체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사이트를 폐쇄하고 철수했다. 야후는 2012년 구글 출신 머리사 메이어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해 정보통신 기업이라는 본래 성격으로 돌아가려했으나, 대세는 이미 구글과 페이스북으로 넘어간 뒤였다. 올해 미국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야후의 점유율은 3.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야후 전직 직원들은 야후의 점진적 몰락의 원인으로 “검색과 소셜 미디어, 모바일이라는 현상을 따라잡는데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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