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보유 위주 소극적 경영 고수
아베노믹스 성장 전략에 장애물
아베노믹스 성장 전략에 장애물
‘아베노믹스’ 추진으로 엔화 약세가 이어지며 일본에서 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늘고 있다.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4월 이후 주춤해지긴 했으나 오름세(전년 동기 대비)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은 기대와 딴판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11월 0.4% 떨어진 것으로 최근 발표됐다. 4개월간의 완만한 상승세가 끝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0일(현지시각) 이런 상황을 전하며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성장 전략이 큰 장애물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20여년에 걸친 경제 부진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임 이래 여러 정책을 시행해왔다. 일본중앙은행이 양적 완화 조처를 펴도록 해 엔화 가치 하락을 이끌어낸 게 대표적이다. 엔화 약세가 수출 기업들의 이윤을 높일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임금 상승과 소비 확대, 물가 상승, 투자 증대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임금 부분에서 고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외교 분야 등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내온 아베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베는 그동안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고 투자를 늘리도록 압박을 넣어왔다. 일본 기업들은 2조달러가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아베는 지난 4일에도 “디플레이션(물가수준의 지속적 하락)을 탈피하는 데서 한걸음 진전을 이뤘다”며 “이런 추세의 가속화 여부는 임금 상승과 투자(증대)의 선순환 쪽으로 얼마나 힘있게 다가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대표 단체의 하나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도 아베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호응이 신통치 않다. 후지중공업 최고경영자인 요시나가 야스유키가 이를 뭉뚱그려 보여준다. 후지중공업은 스바루 자동차 등의 미국 판매 호조로 이번 회계연도(지난해 4월~올해 3월)에 3년 전의 3배를 넘는 35억달러의 이윤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요시나가는 “열심히 일한 직원들에게 (성과를) 돌려주고 싶다 … 그렇지만 (임금 말고도) 고정비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해, 임금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기업의 이런 분위기는 연초 중국발 금융시장 불안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으로 짙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임금 인상 유보 움직임과 관련해 경영자들이 디플레이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디플레이션 여파로 민첩함과 담대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특히 버블 붕괴와 엔화 가치 변동,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영자들이 “어려운 때에 대비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본다. 존 케인스가 비이성적 판단으로도 경제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 등을 담아 얘기한 ‘본능적 충동’(animal spirit)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이 한달 전 권고한 임금 5~10% 인상 방안(2015년 12월4일치 16면)은 과감한 제안으로만 남을 듯하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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