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석유수출국기구
정례회의 빈손…내년 6월 모이기로
하루 생산량 제한도 못정해
WTI 40달러선 붕괴…추가하락 여지
베네수엘라 등 원자재 수출 의존국
저유가로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
정례회의 빈손…내년 6월 모이기로
하루 생산량 제한도 못정해
WTI 40달러선 붕괴…추가하락 여지
베네수엘라 등 원자재 수출 의존국
저유가로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이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 선이 붕괴됐다. 유가 하락으로 원자재 수출 비중이 큰 일부 국가들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이 더 커졌다.
오펙은 4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정례 회의에서 7시간이 넘는 토론을 벌였지만 감산 결정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감산 결정은 못했어도 하루 생산량을 3000만배럴로 유지한다는 선에서 합의를 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합의하지 못했다. 내년 6월 다시 모인다고 밝힌 것이 이번 회의에서 내린 합의 사항의 전부다.
압달라 엘바르디 오펙 사무총장은 “현재로서는 (원유 생산 제한 목표) 숫자를 제시할 수 없다”며 “이란이 복귀하고 있어서 다음 회의까지 (생산 목표에 관한) 합의 결정을 미룬다”고 말했다. 이란이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풀려나면 증산을 할 텐데, 제재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으니 그때까지 원유 생산 제한치를 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오펙 회원국들은 사실 지난해 정했던 원유 생산 제한 목표치도 그동안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시장 조사 기관인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오펙이 하루 원유 생산량 제한이라는 가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국제유가 하락의 근본 원인은 세계 경제 회복이 더뎌 수요량은 별로 늘지 않는 반면에, 셰일 원유 개발 등으로 공급은 늘었기 때문이다. 브렌트유 기준으로 지난해 8월 배럴당 100달러 이상이던 유가는 지난해 9월 이후 급격히 하락세를 탔다. 지난해 11월 오펙의 감산 불가 결정 뒤 유가 하락은 더 급격해졌다. 현재 국제 유가는 지난해 여름에 견주면 60%가량 하락했다.
오펙이 감산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 오펙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을 해도 오펙에 가입하지 않은 러시아 같은 나라가 증산을 해버리면 국제유가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감산이 효과가 없다면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생산량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지키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또한, 감산 결정을 하려면 오펙의 모든 회원국이 동참해야 하지만, 당장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베네수엘라와 이란 같은 나라는 감산에 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란은 서방의 경제제재가 끝나는대로 하루 100만배럴을 증산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슬람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의 정치적 대립도 감산 합의에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오펙 회원국들의 원유 생산량을 합치면 세계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을 넘지만, 오펙의 석유시장 영향력은 줄고 있다. 대신 셰일로 원유 생산 능력이 커진 미국이 석유 시장을 좌우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오펙의 감산 합의 실패로 4일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에 견줘 2.7% 하락한 배럴당 39.97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8월26일 38.6달러 뒤 처음으로 4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오펙이 사실상 생산 증가나 다름없는 결정을 내리면서 원유 가격은 추가 하락할 여지가 더 생겼다.
이에 따라 석유 수출 의존도가 큰 국가들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200%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극심한 물가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3.5%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 브라질의 경제 상황은 1930년대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게다가 미국이 이달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신흥시장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다. 내년 신흥국 경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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