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회원들이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폴크스바겐 자동차 공장 앞에서 이 회사의 디젤승용차 지붕 위에 올라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를 그린 포스터를 들어보이며 ‘배출가스 테스트 조작’에 항의하고 있다. 볼프스부르크/EPA 연합뉴스
‘배출가스 속임수’ 리콜 1100만대
“연비·성능 저하” 수리 거부 움직임
브랜드 흠집에 광고 사기 혐의까지
집단손배소·환매…법정다툼 본격화
“연비·성능 저하” 수리 거부 움직임
브랜드 흠집에 광고 사기 혐의까지
집단손배소·환매…법정다툼 본격화
미국에서 배출가스 속임수가 들통나 대규모 리콜(결함 시정) 명령을 받은 폴크스바겐이 차량 소유자들의 리콜 거부와 환매, 집단손해배상 소송이라는 또다른 위기에 부닥쳤다. 이 회사의 디젤차 소유자들은 중고차 값이 떨어진데다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하거나 소프트웨어를 개선할 경우 연비가 떨어진다며 분개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폴크스바겐그룹이 미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디젤엔진 승용차에 테스트 때에만 작동하는 ‘배출가스 차단 장치’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며 리콜을 명령했다. 리콜 대상 차량은 2009~2015년형 제타, 비틀, 골프, 2014~2015년형 파사트, 2009~2015년형 아우디 A3 등 미국에서만 48만2000여대, 세계 전체로는 무려 1100만대에 이른다. 특히 폴크스바겐 쪽은 유럽연합 내 리콜 대상 800만대 중 300만대는 엔진도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리콜 거부 움직임
리콜 차량 소유자들의 상당수는 연비와 성능 저하를 우려해 리콜에 응하지 않을 태세다. 2013년형 제타 소유자인 미국 시민은 최근 <뉴욕 타임스>에 “연비가 10% 낮아진다면 계속 운행은 하겠지만 불쾌할 거다. 연비가 25% 이상 낮아지고 엔진 출력이 떨어지면 몹시 기분이 나쁠 테고, 리콜을 받을지 고민하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미국법인의 마이클 혼 대표는 미국 의회 증언에서, 결함 시정으로 차량 속도가 조금 느려질 순 있지만 연비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다른 한 소비자는 “성능에 문제가 생긴다면, 리콜이든 재프로그래밍이든 장치 개조든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차를 구입하려 돈을 지불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소유자 클럽’이라는 온라인 동호회에는 “딜러에서 차량 서비스를 받지 마라.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 검사 기준은 통과하겠지만 성능이 약해지고 엔진과 부품 수명이 짧아진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폴크스바겐 디젤차들은 도로 주행 때 기준치보다 최대 40%나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현재로선 환경당국이나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소유자들에게 리콜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리콜 거부자가 많을 경우 꼼짝없이 ‘폴크스바겐표 유독가스’를 마셔야 할 판이다.
신차 수요, 중고차값 뚝
폴크스바겐 디젤차 판매는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온라인 자동차 매매 사이트인 트루카닷컴을 보면, 지난 20일 현재 폴크스바겐 디젤차 검색 건수가 지난달 18일 이후 57%나 급감하면서, 폴크스바겐 전체 브랜드 차량의 검색량도 9% 줄었다.
중고차 매매가 활발한 미국에선 리콜 대상 차량들의 중고차 값이 급락하고 있다. 차량 소유자들로선 펄쩍 뛸 일이다. 지난주 미국 자동차산업 컨설팅회사 에드먼즈닷컴은 폴크스바겐 중고차의 딜러 경매가가 9월 한달에만 6.5% 떨어졌다고 밝혔다. 올 2분기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상태가 양호한 중고차 가격이 지난해보다 7.6%나 오른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폴크스바겐 골프 소유자인 미국 시민은 최근 <로이터> 통신에 “(중고차 값 하락을 지켜보는 게) 림보를 통과하는 기분”이라며 “지금 가격으론 내 차를 팔 수 없고 팔고 싶지도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환매와 집단손배소 직면
폴크스바겐은 전세계 소비자들로부터 차량 환매와 거액의 집단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20일 현재 695명이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미국 법원에 ‘매매계약 취소 및 매매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이달 중순 캘리포니아주에서 거의 7만명의 집단손해배상 소송 대리인으로 나섰다. 캘리포니아주법은 자동차 구입 뒤 7년 또는 7만마일 주행 때까지 배출가스장치 품질 보증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새 차로 바꿔주거나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에선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조향장치 결함이 확인된 차량 5000여대를 되사주기로 소비자들과 합의한 사례가 있다.
이와 별개로,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는 폴크스바겐이 ‘클린 디젤’(깨끗한 디젤차)을 강조한 30초짜리 텔레비전 광고가 사기죄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그레그 키팅 남캘리포니아대 로스쿨 교수는 <에이피>(AP) 통신에 “고소인들이 ‘폴크스바겐은 내가 애초 기대했던 차로 바꿔줄 수 없고, 그들의 잘못으로 내가 환경에 해를 끼치고 (배출가스 기준) 법규를 어기게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변호사들은 손해배상액의 약 30%를 수임료로 챙길 수 있는 수지맞는 소송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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