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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구호 최전선에 선 ‘요구르트 억만장자’

등록 2015-10-18 20:56수정 2015-10-21 10:37

지난달 터키에서 출발한 유럽행 난민들이 밀려드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유엔난민기구(UNHCR)와 함께 임시 난민캠프를 방문한 함디 울루카야가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지난달 터키에서 출발한 유럽행 난민들이 밀려드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유엔난민기구(UNHCR)와 함께 임시 난민캠프를 방문한 함디 울루카야가 자원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터키 출신 쿠르드족 ‘함디 울루카야’
지난달 유럽 난민위기의 최전선인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파란색 유엔난민기구(UNHCR) 조끼를 입고 나타난 억만장자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하고,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 구호기금으로 200만달러(약 23억원)를 내놓는 등 남다른 행보를 보여온 이였다.

미국 그리크 요구르트 시장 58% 차지
난민 600명 고용·유엔에 거금 내놔
재산 절반 기부 약속하고 직접 구호활동

함디 울루카야(43)는 미국에 달지 않은 그리스식 요구르트 ‘초바니’를 소개해 요구르트 업계의 판도를 바꾼 거물이다. <포브스>는 그의 자산을 14억달러(1조5900억원)로 추정한다.

터키에서 나고 자란 그도 이주자다. 유프라테스강 인근 에르진잔주 일리츠라는 작은 마을 출신으로, 부모는 목장을 운영하며 페타치즈를 만들었다. 가족은 날씨가 풀리면 양떼를 끌고 정기적으로 유목생활도 했다. 그는 오스만튀르크 제국 몰락 뒤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해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이기도 하다. 울루카야는 “터키를 떠난 건 내가 쿠르드족이며 쿠르드족의 인권에 대해 굉장히 심각히 고민했기 때문이다. 터키 내 많은 쿠르드족은 인권이 짓밟히고, 마을이 폭격당했기에 나라를 떠났다”고 최근 <시엔엔>(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터키 앙카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울루카야는 22살이었던 1994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가업’을 잇게 됐다. 미국을 방문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미국 페타치즈를 맛보고는 고향집 페타치즈를 미국에서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자,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치즈를 들여와 팔던 그는 2002년 유프라테스라는 회사를 세워 직접 미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즈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초바니 요구르트는 그의 두번째 사업이다. 2005년 문 닫은 요구르트-치즈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지역 부동산업체 전단지 한장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 공장은 1920년에 지어져 최근까지 세계적 식품업체인 크래프트 푸즈가 사용하던 곳으로 뉴욕에 있었다. 오래됐지만 기계는 쓸 만했고 매매가는 기계값만도 못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고향에서 먹던 깊고 깨끗한 맛의 요구르트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미국 요구르트는 인공향으로 가득했다. 요구르트 사업에 승산이 있어 보였다.

울루카야는 중소기업청에서 80만달러를 대출받고, 지역 경제개발 조직들의 보조금을 받아 공장의 주인이 됐다. 터키에서 요구르트 명인 무스타파 도안을 모셔오고 크래프트 출신 4명을 모았다. 울루카야는 이들과 18개월 동안 완벽한 요구르트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매달렸다. 목표는 무방부제, 무인공향료의 건강한 요구르트를 만들면서도 일반 슈퍼마켓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터키어로 ‘양치기’를 뜻하는 ‘초바니’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처음 내놓은 요구르트 300개는 2007년 롱아일랜드의 슈퍼마켓에 진열됐다. 첫해 매출이 2500만달러를 기록했다. 설립 5년 만에 초바니는 미국 그리크 요구르트 시장의 58%를 차지했다. 연간 수입은 10억달러를 넘었고,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요구르트 브랜드가 됐다. 그러자 이듬해 울루카야는 4억5000만달러를 들여 아이다호주 트윈폴스에 세계 최대 요구르트 공장을 지었다. 5명의 직원은 2000명으로 늘었다.

성공과 함께 곡절도 찾아왔다. 2013년 가을 새 공장에서 생산한 요구르트가 곰팡이균에 오염된 것으로 판명 나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다. 매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새 공장에 들어간 비용도 부담이었다. 회사는 7억달러의 빚더미에 앉았다. 당시 글로벌 투자회사인 티피지(TPG)로부터 자금 수혈과 컨설팅을 받은 초바니는 다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외신들은 울루카야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곧 물러날 수 있다고 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가 기업을 지휘하고 있다.

울루카야의 드라마틱한 사업 성공기만큼 인간 울루카야의 선행도 화제가 돼왔다.

그는 지난 5월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 부부와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이 ‘재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자’며 만든 ‘기빙 플레지’(기부 서약)에 동참했다. 이미 초바니 설립 초 ‘수익의 10% 기부’를 회사 방침으로 정해 시행 중이었다. 울루카야는 기빙 플레지 실행을 위해 개인 기부재단 텐트(TENT)를 세워 세계 난민구호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터키를 통해 탈출하고 있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의 구호자금으로 유엔난민기구에 200만달러를 내놨다. 그는 “내 (성장) 배경이 내가 난민에 대해 알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울루카야는 초바니를 세운 이듬해부터 공장에 난민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초바니의 울타리 안에서 일하는 난민은 600명에 이른다.

이제 그는 미국 기업인들에게 난민 구호에 나서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난민들을 4~5년간 고용해온 나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돈, 지식, 실행력, 기술, 의욕 등 모두 충분하다”며 “우리가 더 빠르게 행동에 나서야 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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