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근모의 글로벌 모니터
얼마 전 학교 동창과 밥을 같이 먹었다. 심성이 곧으면서 남과 함부로 대거리를 하지 않는 친구였다. 회사에서 일도 참 잘했던 걸로 알았는데, 지금은 지사로 좌천돼 20여년간 해온 것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속된 말로 “경영진에 찍혔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전에는 회사가 아무 업무를 주지 않고서는 최하 등급의 인사평가를 매겼다고 들었다.
얼마 전 정부는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 소식을 접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바로 그 친구였다.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의 명분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단위노동비용이 낮아지면 경제 전체의 경쟁력이 향상돼 이론상 일자리가 늘어난다. 일본과 유럽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쟁력을 부풀리는 환경에서는 우리의 생산성 제고 노력이 더욱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선후와 본말이 전도되었다. 과도한 노동비용은 낮은 생산성보다는 기본적으로 과도한 노동력 재생비용, 즉 노동자들의 과도한 생활비용에서 비롯된다.
스위스의 투자은행 유비에스(UBS)가 최근 전세계 71개 도시의 생활비용을 분석했다. 서울의 물가수준은 주거비를 제외할 때 세계에서 열한번째로 높았다. 도쿄보다 단지 4.7% 저렴했을 뿐이다. 상하이보다는 22% 비싸다.
소득이 많으면 물가가 좀 높아도 별 탈 없다. 그러나 소득을 물가수준으로 나눈 서울의 구매력은 도쿄의 3분의 2에 불과했다. 소득에 견주면 물가가 더더욱 비싸다는 뜻이다. 구매력으로 측정한 서울의 삶의 질은 세계 38위다. 예를 들어 서울의 식품값은 세계 2위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같은 가전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쌌다. 세계 최고의 가전 제조 국가 명성이 무색하다. 노동생산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품시장의 구조적 비효율성이나 독과점 초과이윤의 존재를 시사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유비에스의 조사에 따르면, 그나마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세가 서울의 경쟁력이다. 서울의 평균 월세는 주요 도시 중 29위다. 도쿄에 비해 34% 싸고, 뉴욕보다는 71% 저렴했다. 미국 주요 도시들의 월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심각한 주택임대 사정은 마치 우리가 가는 길을 예시하는 듯해 오히려 섬뜩하다.
미국의 자가 보유율은 63.4%다. 48년 만에 최저치다. 금융위기로 무려 700만가구가 집을 잃은 탓이다. 자연히 월세 수요가 급증했다. 임대용 주택 중 빈집은 30년 만에 최저치다. ‘엠피에프(MPF)리서치’라는 조사업체에 따르면, 미국의 월세는 최근 일년 새 5.2% 올랐다. 15년 만에 가장 심한 인플레이션이다. 같은 기간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약 2%밖에 오르지 않았다.
하버드대학 부설 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내는 미국 가구 수가 2000년 70만이던 게 올해에는 118만으로 급증했다. 10년 뒤에는 130만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나마 월세가 임금과 같은 속도로만 오른다는 희망을 전제로 한 추정이다.
경제학자들은 월 소득의 30% 이상을 월세로 지출하면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버클리대학 부설 연구소가 조사해봤더니 이런 ‘문제’ 가구가 미국 세입자의 절반이나 된다. 다른 조사에서는 미국의 평균 월세가 이미 평균 소득의 30%를 넘어 버린 걸로 나왔다. 초유의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평균 월세는 평균 소득의 49%나 된다.
대안은 집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대략 월 소득의 15%만 부담하면 된다. 이자가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은 다양한 이유로 막혀 있다. 집값의 일부를 치를 목돈이 있어야 하는데 비싼 월세를 내느라 저축을 못한다. 젊은 가구들은 엄청나게 진 학자금 빚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금융위기로 혼이 난 은행들은 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자가 주거율이 높은 경제가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월세가 뛰면 임대용 주택 건설이 급증하는 게 경제원리다. 그러나 이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 토지가격 등 원가가 너무 비싼 탓이다. 건설업자들은 비싼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고급 주택만 주로 짓는다.
미국 국내총소득 중에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기업 영업잉여로 가져간 비중은 50년 만에 가장 높다. 이렇게 자본에 뭉텅 떼주고 받은 노동 대가에서 다시 3분의 1을 ‘지대’(地代)의 형태로 반납하는 게 미국 무주택 노동자들, 전체 가구 37%의 현실이다.
턱없이 높은 지대는 “과도한” 노동비용 압력을 야기한다. 최종 소비자의 구매력도 약화시킨다. 모두 자본의 이윤을 갉아먹는 요소다. 외견상 지주는 자본과 대립관계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이 구분은 뚜렷하지 않다. 금융자본은 과잉 축적된 산업자본의 발현 형태이고, 토지자본은 바닥으로 추락한 산업 및 금융자본 이윤의 탈출구이다. 이렇게 뒤틀린 자본주의를 방치하면 ‘공동번영’의 구호를 믿을 중산층은 사라지고 만다. 미국의 현실이 경고하는 바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