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 6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연기금들의 화석연료 투자 회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구와 가난한 이들은 투자 회수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화석연료 해방’(Fossil Free) 누리집 갈무리
북해 유전 기반 노르웨이 국부펀드
대우인터·포스코도 투자대상서 제외
6월에 화석연료 산업 투자 중단키로
기후변화 우려한 시민사회 진영
대학·연기금 등에 투자회수 촉구
대우인터·포스코도 투자대상서 제외
6월에 화석연료 산업 투자 중단키로
기후변화 우려한 시민사회 진영
대학·연기금 등에 투자회수 촉구
투자규모 8700억달러로 세계 최대 국부펀드로 꼽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최근 한국의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벌이는 사업이 인도네시아 아열대 산림을 팜오일 농장으로 바꿀 위험이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함께 대우인터내셔널의 대주주인 포스코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최근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산업에 대해서 투자 중단 및 회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 투자 중단은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앞서 지난 6월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표적 화석연료인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석탄 산업 투자를 중단한 것은 각종 연기금들의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주장하는 이들을 고무시킨 이정표적인 사건이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 판매 수입금을 기반으로 한 펀드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오일 펀드’라고도 불린다. 대표적인 화석연료인 석유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운영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화석연료 투자를 줄여나간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상징적이다. 또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전세계 주식을 평균 1.3% 보유한 거대 기금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화석연료 산업 투자를 줄여나가는 것은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가 대학이나 공공기관, 연기금에 특정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는 방식의 운동은 예전에도 있었다. 악명 높은 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집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해 벌어졌던 남아공 정부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촉구 운동이 대표적이었다. 이밖에도 무기나 담배 같은 산업에 대해서도 연기금들의 투자를 철회하라는 운동이 과거에 있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석탄 관련 기업 투자 중단 조처 이전에 이미 집속탄을 제조하는 한국의 한화나 담배 제조사인 케이티앤지(KT&G)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 배경이기도 하다.
화석연료 관련 산업 투자 철회 촉구 운동에 대한 호응은 최근 몇년 사이 대학과 종교단체, 기금들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2년 미국 <뉴요커> 기자 출신 환경운동가인 빌 매키번이 ‘350.org’라는 단체를 통해 화석연료 투자 회수 촉구 운동을 벌인 뒤, 최근까지 220곳 이상의 연기금이 이에 호응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11억8000만달러 규모를 운용하는 미국 시러큐스대 기금은 지난 4월에 화석연료 관련 기업에 투자한 돈을 회수해 이를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종교단체 관련 기금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이 운동에 동참했다. 지난해 말에는 석유왕 록펠러 가문의 자선기금을 운용하는 ‘록펠러 형제 재단’이 화석연료 관련 산업 투자를 철회해 화제가 됐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는 화석연료 투자 중단 및 회수 운동이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관련이나 담배회사 투자 중단을 뛰어넘어 가장 빠르게 호응을 얻는 운동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옥스퍼드대는 올해 석탄 관련 투자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화석연료 관련 사업 투자 철회 운동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화석연료 관련 산업 투자 중단 운동이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 정도만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여전히 화석연료 관련 사업에 투자할 돈은 넘쳐나기 때문에 화석연료 관련 기업이 실질적으로 타격을 입을 일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 감소는 재생에너지 개발 정책과 연구 등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 중단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 하버드대는 일부 학생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하버드대 기금의 화석연료 투자 중단을 선언하지는 않고 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교수인 로버트 스타빈스는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학생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타당하다”면서도 “화석연료 투자 중단 및 회수 운동은 화석연료 기업의 자본 조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 문제는 국내적 또는 국제적인 공공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대신에 화석연료 기업의 주주로 남아서 오히려 이들 기업에 대한 감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 관련 사업 투자 철회 운동이 설령 상징적인 의미만 있다 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환경운동가인 밥 매시는 <뉴욕 타임스>에 “1980년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관련 기업 투자 철회 운동 때처럼 이번 화석연료 관련 사업 투자 철회 운동도 일견 바보 같은 제안처럼 보이는 주장이 실현 가능해지는 신비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석탄기업 투자 중단 등은 한때 금기로 여겨졌던 주제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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