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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경제

미국 대학 ‘학자금 대출’, 졸업 뒤 번 만큼만 갚는다

등록 2015-08-16 15:12수정 2015-08-16 21:04

미국 워싱턴의 조지워싱턴대학 졸업식 장면
미국 워싱턴의 조지워싱턴대학 졸업식 장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 캠퍼스에 다니는 엘리다 곤잘레스는 최근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13번가(13th avenue) 펀딩’이라는 비영리단체로부터 1만5000달러를 대출받았다. 엘리다가 이 단체와 맺은 계약은 ‘소득공유’ 약정으로, 기존 학자금 대출과는 다르다.

기존 학자금 대출은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갚아야 하는 반면 소득공유 플랜에서는 엘리다의 소득이 연 1만8000달러 이상이 돼야 상환에 들어간다. 상환액도 수입의 5%로 제한되고, 15년 동안만 내면 된다. 이 제도에서는 엘리다가 졸업 뒤 수입이 좋을 경우에는 빌린 돈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갚을 수 있다. 최대 6만달러까지 갚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엘리다가 학자금 빚 때문에 쪼들릴 우려는 없다. 돈을 번 만큼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엘리다는 “그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며 기꺼이 이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소득공유 플랜’이라는 새로운 학자금 마련 제도가 각광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날로 치솟는 학자금, 이에 따른 학자금 대출 수요의 증가, 졸업 뒤에도 과중한 학자금 대출 빚에 쪼들리는 생활 등 학자금이 큰 사회적 부담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학자금을 꿔주는 쪽이나 빌리는 학생 모두가 위험 부담을 회피하려는 새로운 학자금 마련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비영리 ‘소득 공유 플랜’ 인기

연 소득 1만8000달러 돼야 상환

수입의 5% 이내, 최대 15년만

고소득자는 더 많이 갚을 수도

‘학생의 미래에 투자’ 개념

“우수 학생들만 혜택” 우려도 엘리다가 이용한 소득공유 플랜은 졸업 뒤 수입이 일정 금액을 넘어야 상환을 시작하고, 수입의 일정 부분씩 정해진 기간만큼만 갚으면 된다. 졸업 뒤 빌린 돈 전액을 무조건 상환해야 하는 기존 학자금 대출과는 달리, 학자금 빚에 허덕일 위험은 줄었다. 수입이 안 좋으면 학자금을 아예 갚지 않거나, 자신의 능력에 맞게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학생이 졸업한 뒤 고소득자가 되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는다.

이 때문에 소득공유 플랜은 학생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실험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늘어나는 학자금 부담을 해결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 수입을 담보로 학자금 대출이 과중한 빚으로 이어질 위험 부담을 피하고, 투자자들은 유능한 학생들의 미래 수입에 투자하는 구조다. ‘우량 학생’에 대한 주식 투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제도는 시카고와 새크라멘토에서 시작돼, 텍사스 오스틴 등 다른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 인디애나주 퍼듀대학교의 미치 대니얼스 총장은 학교에서 곧 이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그는 “학자금 대출이 폭발적으로 늘고, 갚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며 “이런 상황 때문에 소득공유 플랜을 심각하게 검토하게 됐는데, 이는 기존 학자금 대출 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정부 차원의 법제화도 시도되고 있다. 토드 영 하원의원은 지난달 소득공유 플랜에 관한 입법안을 냈다. 법안은 졸업한 학생의 연소득이 최소한 1만8000달러가 되지 않으면 학자금을 상환할 필요가 없도록 규정했다. 상환기간도 30년으로 제한했고, 파산 등에 처하면 상환을 면제하도록 했다.

소득공유 플랜 아이디어는 이미 1950년대부터 나왔다. 2002년 밴더빌트대 교수들은 연구실험 차원에서 이 제도를 남미의 4개국에서 실시해, 7000건의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회수율은 10~15%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자금 대출 부채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부담이 커지자, 소득공유 플랜은 현실적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1분기까지 누적된 미국 학자금 대출 총액은 무려 1조3600억달러에 달한다. 2006년 5000억달러에서 9년 만에 175%나 늘어난 것이다. 미국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자금 대출 빚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통계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앞다퉈 학자금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수입 기반 상환제도에 입각한 학자금 대출 제도를 내놓았다. 학자금을 빌린 학생들은 졸업 뒤 수입의 1%만 매달 갚도록 하는 내용이다. 일부 주정부들은 졸업 뒤 몇년간의 수입을 공제하는 조건으로 무상교육 제도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은 재정 부담이 너무 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소득공유 플랜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백악관 교육보좌관을 지낸 데이비드 버저런은 “학생들이 빌린 돈보다도 더 많은 돈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은 불공정하고 약탈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제도가 일반화된다면 우수한 학생들만이 대상이 되고 신통치 않아 보이는 학생들은 학비 대출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는 연방정부의 학자금 보조 제도의 근간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현재 이 제도는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일반 투자회사들도 참가를 검토중이다. 조만간 학생들 개개인의 ‘미래 수입’을 근거로 한 증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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