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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경제

반복되는 원자재 파동은 누구 탓인가

등록 2015-08-09 20:54

안근모의 글로벌 모니터
우리 시각으로 지난달 20일 아침, 금값이 갑자기 폭락했다. 누군가가 뉴욕시장에서 무려 5억달러에 달하는 매물을 한꺼번에 내던졌다. 무게 13t에 해당하는 금이다. 1130달러 정도 하던 금값이 30초 만에 1080달러로 떨어져버렸다. 5년 만에 가장 낮은 값이 됐다.

‘슈퍼사이클’ 원점 복귀
신흥국들 거품붕괴 위험

금값의 폭락은 상징적인 일화 중 하나일 뿐이다. 원유와 구리 같은 산업용 원자재 가격도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2002년 2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져 있다. 2002년 2월은 경제 역사에서 의미가 매우 큰 시점이다. 원자재 가격의 대대적인 상승, “슈퍼사이클”이 시작된 때다. 그 슈퍼사이클이 지난달 들어 원점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원자재 파동의 시작과 끝에는 모두 중국이 있다. 2002년 초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본격적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한 때다. 8% 안팎이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쉼 없이 솟아올라 2007년에는 무려 15%에 육박했다. 그 엄청난 성장을 위해 거의 모든 종류의 원자재가 동원됐다. 그리고 지금, 중국의 성장률은 7%로까지 낮아졌다.

‘2002년 2월’은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달러 가치의 대대적인 하락세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기술주 거품 붕괴로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져 있던 때였다. 연방준비제도(Fed)는 2001년 1월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리면서 돈을 풀었다. 6.5%이던 기준금리를 그해 말에는 1.75%로까지 낮췄다. 미국 중앙은행이 돈값을 기록적인 속도로 떨어뜨리자 달러 가치가 곤두박질쳤다. 2002년 2월부터 반년 사이에 13%나 폭락했다. 달러로 표시되는 원자재 값이 자연히 뜀박질했다.

미국의 저금리 정책은 원자재 가격 앙등을 간접적으로도 촉진했다. 연준이 풀어놓은 값싼 달러는 수익률이 더 높은 곳을 찾아 전세계로 흩어졌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중국으로 몰려든 유동성은 실물경제의 투자활동을 촉진해 고성장을 이끌어냈다.

2002년 원자재 슈퍼사이클의 개막에는 유로존의 역할도 작지 않았다. 2000년 말까지만 해도 미국의 기준금리는 유로존보다 1.75%포인트나 더 높았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를 4.75%포인트나 내리는 동안 유럽중앙은행(ECB)은 1.5%포인트밖에 인하하지 않았다. 금리의 높이가 순식간에 역전됐다. 유로의 강세, 달러의 하락세가 증폭됐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도 자연히 증폭됐다.

양쪽의 금리정책 편차는 몇 년 뒤 결국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2007년의 일이다. 미국 연준이 긴축을 끝낸 지 1년이 지난 2007년 6월까지도 유럽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계속됐다. 높은 원자재 가격 탓에 유럽의 물가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두 달 뒤인 8월, 연준이 황급히 금리를 인하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시작된 직후다. 유로존이 죄고, 그 와중에 미국이 돈줄을 풀기 시작하자 유로가 급등하고 달러는 추락했다. 원자재 가격이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2007년 가을 이후의 “원자재 슈퍼스파이크”는 그렇게 시작됐다.

경기침체로 빚 갚기가 어려워진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에게 원자재 값 폭등은 재앙이었다. 부채 상환에 쓸 실질소득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로존의 통화정책 엇박자가 촉진·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로존은 당연히 각기 경제 상황에 맞추어 자율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그러나 양쪽이 발행하는 화폐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국제 경상거래에서 사용하는 준비통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쪽의 통화정책 변화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세계 경제에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 화폐제도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리고 그 결함은 전혀 치유되지 않았다.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한 유럽중앙은행은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완화정책에 돌입했다. 반면,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한 뒤 금리 인상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갔다. 양쪽의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면서 유로가 급락하고 달러는 급등했다. 달러가 뛰자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폭락했다. 그래서 물가하락 압력이 더 커지자 유로존은 양적완화에 나섰다. 달러의 상대가치가 더 뛰어올랐고 원자재 폭락세는 심화됐다.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유럽의 완화정책이 물가하락을 부추기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2007년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지난 2000년대 느닷없는 유동성 호황을 만끽했던 신흥국들은 지금 거품붕괴 위험에 직면했다. 꺼지는 거품을 새로운 거품으로 막아온 중국 경제는 난간 위에 서 있다. 지금 중국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원자재 수출 국가들의 사정은 더욱 위태롭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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