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들의 통화 가치가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강세 현상과 맞물린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이 또다른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달러 대비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를 나타내는 제이피(JP)모건신흥국통화지수가 1999년 이 지수가 만들어지 이후 최저치인 71.88을 기록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시엔엔 머니>는 27일 기준으로 브라질 헤알은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동아시아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도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 폭은 원자재 수출 비중이 큰 나라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났다. 28일 기준으로 달러 대비 브라질 헤알 가치가 연초보다 24.6% 떨어졌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브라질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추면서, 현재 투자 적격등급 가운데 가장 아래 단계에 있는 브라질 신용등급을 추후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낮출 수도 있다고 내비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 가치도 28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8.8% 하락했다. 원자재 의존도가 적은 신흥국인 터키의 리라도 연초 대비 18.4% 떨어졌다.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 이유 중에서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원인은 달러 강세 현상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르면 오는 9월 기준금리를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올릴 수 있다는 전망에 강달러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로 상대적으로 위험한 신흥국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고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은 가속화된다. 강달러 현상에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고전하는 신흥국들에 최근 또다른 악재는 중국 증시 급락으로 대변되는 중국 경제 불안이다.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신흥국 경제에 또다른 부담이 된다.
<시엔엔 머니>는 최근 일부 국가 통화에 견줘 달러 가치가 지나치게 뛰었고, 이 때문에 신흥국 통화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매체는 1980년대 강달러 현상은 중남미 부채 위기를 불렀고, 1995년의 달러 강세 현상도 동아시아 경제 위기를 일으킨 요인이었다고 전했다. 또 지금 세계는 1990년대보다 더 통합되어 있어서 위기가 더 큰 폭으로 파급될 수 있고, 중국 증시 폭락이 신흥국 불안의 시작일 수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18년 전 타이 화폐 밧의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의 메아리가 다시 울려퍼지고 있다고 28일 전했다. 투자은행 르네상스캐피탈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찰리 로버트슨은 “미 금리 인상 가능성, 달러 강세, 원자재 가격 하락, 중국 경기 둔화는 과거에도 있던 일”이라며 “지금 다른 점은 이 세 가지 일이 한번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달러 부채가 많았던 기업들이 희생당했지만 최근에는 가계 부채에 허덕이는 개인들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타이의 가계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09년 이후 최대인 2조8000억밧에 이르고, 인도네시아도 개인 대출이 위험 수준이라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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