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2월27일 당시 서독의 은행가인 헤르만 요제프 압스가 서독 대표 자격으로 ‘런던 합의’에 서명(사진 가운데)하는 모습.
“독일은 역사의 교훈을 잊어버렸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한 우려와 그리스 부채 경감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탕감받아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전례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7일 “오래된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 다시 떠돌고 있다”며 그 사례를 재조명했다.
신문이 “오늘날까지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한 이 사진은 1953년 2월27일 당시 서독의 은행가인 헤르만 요제프 압스가 서독 대표 자격으로 ‘런던 합의’에 서명(사진 가운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승전 채권국들은 ‘런던 합의’를 통해 독일의 부채를 절반이나 탕감해줬다. <뉴욕 타임스>는 “이 사진이 (현재 그리스 부채에 대한) 독일의 위선적 태도를 일깨워주는 것을 넘어, 중요한 교훈을 준다”고 강조했다. 20세기의 경험은 국가부채 위기를 다루는 정책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풍부한 로드맵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경제학자들이 그리스 위기 해법의 성공적 접근법을 대체로 알고 있지만, 절대다수의 정책 입안자들이 그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카르멘 라인하르트 하버드대 교수 등의 최근 연구를 보면, 독일은 1934년 디폴트에 빠졌을 당시 채권국들로부터 최소 43%, 남미 국가들은 1990년대 재정위기 때 평균 36%의 부채를 탕감받은 뒤 경제가 극적으로 회생했다. 라인하르트 교수는 “대규모 부채는 부채 가치의 대규모 평가절하(경감)로만 해결되며, 부채 경감까지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탕감해 줘야 할 부채 규모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부채의 고통과 탕감의 효과는 누구보다 독일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독일은 1953년 런던 합의에 따른 부채 경감으로 경제 번영에 성공했던 것과 정반대의 뼈아픈 경험도 있다. 독일은 앞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도 패하면서 막대한 빚더미에 올랐고,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를 감당하지 못한 채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극도의 궁핍과 좌절감은 이후 극우 민족주의를 앞세운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집권하는 토양이 됐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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