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최고의 작품은 한정돼 있는데 ‘슈퍼리치’는 늘어나 가격 급등
‘알제의 여인들’ 구매 능력 갖춘 부자들 18년 새 4배나 증가
‘알제의 여인들’ 구매 능력 갖춘 부자들 18년 새 4배나 증가
피카소의 그림은 세계화와 빈부격차의 수혜 품목이다?
지난 11일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알제의 여인들>이 1억7936만5000달러(약 1964억2261만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같은 날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는 1억4128만5000달러(1549억원)에 팔려 조각품 최고 경매가 기록도 깨졌다.
<뉴욕 포스트> 등 일부 외신은 21일(현지 시각) 카타르 왕족 출신 억만장자 하마드 빈 자심 알사니 전 총리가 <알제의 여인들>의 낙찰자라고 전했으나, 공식 확인된 바는 없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단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뛰는 예술품 가격들이 불평등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품 가격이 치솟는 원인은 간단하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세계적 불평등을 설명하는 1억7900만달러의 피카소’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피카소의 작품을 사는 데 재산의 1%를 쓴다고 가정할 때, 약 179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억만장자는 현재 세계에 50명 정도 있다. <알제의 여인들>이 마지막으로 경매에 부쳐진 1997년과 비교한다면,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현재 179억달러는 당시 시세로 123억달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때 그만큼의 자산을 가진 부자는 12명뿐이었다. 1억7900만달러짜리 그림을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18년 사이 대략 4배로 뛰었다는 의미다. 1997년 당시 그 작품의 경매가는 3190만달러였다. 신문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오늘날 약 4670만달러에 해당한다며, 가격이 462%나 뛴 셈이라고 꼬집었다.
피카소 그림이나 자코메티 조각품의 수는 고정돼 있지만, 최고의 작품을 살 능력과 의사가 있는 억만장자의 수는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지난해 파리경제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의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세계 최상위층 소득 자료’를 들었다. 경제학자들은 “프랙털 불평등”(fractal inequality)이라는 개념을 내놨는데, 불평등 격차가 최상위로 올라갈수록 반복·심화되는 구조를 뜻한다. 미국 상위 1% 소득자인 대형 로펌 파트너들의 소득은 상위 10%에 속하는 치과의사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했고, 상위 0.1%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소득은 로펌 파트너들의 소득보다 더 빠르게 상승했다. 더 나아가 최상위 0.01%에 해당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의 소득은 최고경영자들의 소득 상승 속도마저 따돌렸다는 식이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존 맥더멋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에서 영국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의 ‘위치재’(positional goods) 이론을 끌어와 이 현상을 설명했다. 허시는 저서 <성장에 대한 사회적 한계>에서 원천적으로 극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지위 상품’이라고 규정했다. 맥더멋은 피카소의 그림은 물론 스코틀랜드의 고성들과 런던 중심가의 주요 자산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고 짚었다. 이어 ‘미술품 가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불평등을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맥더멋은 “그렇다. 다 피카소와 함께 피케티에 관한 문제”라고 답했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지난해 <21세기 자본>으로 금융자본주의 세계의 빈부격차에 경종을 울린 ‘슈퍼스타 경제학자’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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