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통해 차량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인 우버를 스마트폰에서 실행하고 있는 모습. 우버는 대규모 자본금 조달에 성공한 대표적 인터넷 신생기업이다.
실리콘밸리 자본조달 거액 몰려
20억달러 모은 우버 추가모금 계획
넘치는 유동성과 저금리 배경
엘리트 기업에만 투자 쏠림 현상도
20억달러 모은 우버 추가모금 계획
넘치는 유동성과 저금리 배경
엘리트 기업에만 투자 쏠림 현상도
“지금은 고대 이집트 시대 이래 자본을 조달하기에 역대 최고의 시기일 겁니다.”
온라인 협업 소프트웨어 분야의 신생기업인 슬랙의 최고경영자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유망 신생기업에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 최근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2000년 전후 닷컴버블 때를 능가하는 돈잔치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신생기업 자본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모바일 차량 예약 서비스 신생기업인 우버는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무려 20억달러(2조1700억원)의 자본을 조달했다. 우버는 추가로 약 15억달러 상당의 자본 조달을 계획하고 있다. 이 계획이 실행될 경우 우버의 회사 가치는 500억달러가 된다. 5개월 전에는 전략적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우버는 당시 활동 자금으로 12억달러를 쓸어 담았다.
익명 메시지 서비스 이크야크도 최근 7개월 동안 세차례 자본 조달을 통해 7억3500만달러를 모았다. 인적자원 관리 분야 신생기업 제너피츠는 5월 초에 끝난 자본 조달을 포함해 최근 2년 사이에 5억8000만달러를 모집했다.
몰려드는 헤지펀드, 전략적 투자자들로 인해 최근 우버 등 신생기업들의 자본 조달은 속도와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성황을 누리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유망 신생기업이었던 링크트인은 최초 3차례의 자본 조달을 하는 데 3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약 20개 이상의 첨단기술 신생기업들이 3차례 자본 조달을 1년6개월 안에 끝냈다. 지난해 약 500개의 신생기업은 1년 안에 자본을 조달했다.
헬스클럽 회원 관리 기업 클래스패스는 9개월 반 만에 3차례의 자본 조달을 마쳤다. 슬랙은 6개월 전 1억2000만달러를 끌어들인 데 이어 지난 4월 1억6000만달러를 추가로 끌어모았다. 모바일 대화 애플리케이션 기업인 스냅챗도 지난해 12월 투자자들로부터 5억달러를 조달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스냅챗에 2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올해 1분기 미국 실리콘밸리 신생기업들의 자본 조달액은 42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증가했다. 이는 2000년 이래 최대 금액이라고 미국 벤처캐피털협회는 밝혔다.
유망 신생기업들의 자본 조달 호황은 기업들의 필요보다는 투자자들의 욕구 때문이다. 우버가 몇개월 만에 다시 자본 조달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밀려드는 투자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 기업 관계자가 밝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돈풀기 때문에 부동자금이 넘치고 있다. 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의 좋은 투자처로 유망 신생기업들이 떠올랐다. 기업들의 공개 상장이 줄어든 상황도 투자자들이 신생기업들의 자본 조달에 몰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닷컴버블 때와는 달리 최근 첨단기술 분야 신생기업들의 수익 모델이 개선된 점도 요인이 됐다.
문제는 이런 돈잔치 역시 소수 기업에만 몰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우버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회사 멘로벤처의 마크 시걸 이사는 적어도 자산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엘리트 기업들을 일컫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에만 돈이 몰린다고 지적했다.
신생기업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당장 돈 쓸 곳도 없지만, 일단 밀려드는 돈은 챙겨놓고 보자는 입장이다. 슬랙의 최고경영자 버터필드는 최근 모은 새로운 돈을 “당장 쓸 데가 없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이 돈은 장기적으로 우리와 함께 갈 대형 고객들이 우리에 대해 더 좋은 인식을 가지도록 만들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제너피츠의 최고경영자 파커 콘래드는 이처럼 번갯불에 콩 볶는 듯한 자본 조달은 경쟁자들에 대항할 수 있도록 회사의 규모를 신속히 키우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너피츠는 이 돈으로 1만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쓸 계획이다. 콘래드는 2014년 초 이후 제너피츠의 3차례 자본 조달을 지적하며, “우리는 정말로 크고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다”며 “그러려면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생기업들은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당장 돈 쓸 데가 없어도, 자금줄이 마를 미래에 대비해 현재의 돈잔치를 활용하려 한다. 업프런트벤처스의 임원 마크 서스터는 “일부 기업들은 최근 조달하는 자본을 불가피한 조정의 충격을 완화할 ‘군자금’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 밀물은 최고조이고 (이 밀물이 빠질 때) 누가 벌거벗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최근 자본조달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주요 신생기업들의 로고들. 위부터 우버, 이크야크, 클래스패스, 슬랙, 제너피츠. 해당 기업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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