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방문 발표 이어 방러 계획 공개
유로존 축출땐 러와 연대 밝혀와
서방, 러시아 영향권 편입될까 촉각
유로존 축출땐 러와 연대 밝혀와
서방, 러시아 영향권 편입될까 촉각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그리스가 구제금융 위기를 벗어나려 ‘양다리 걸치기’ 정책을 펴면서 유럽이 뜻밖의 지정학적 안보 위험에 휩싸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리스 정부가 교착상태에 빠진 유로존(유로 통용 19개국) 채권단과의 협상 국면을 타개하려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최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전화통화를 한 뒤 오는 23일 독일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두 나라 정부가 16일 밝혔다. 그런데 지난 1월 취임한 치프라스 총리의 첫 독일 방문 계획이 발표된 지 불과 몇시간만에, 치프라스 총리가 다음달 러시아도 방문할 것이란 사실이 공개되면서 유럽 외교가가 술렁였다. 그리스 총리실은 “치프라스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오는 4월8일 모스크바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바로 이날, 미국 국무부의 빅토리아 눌런드 유럽담당 차관보는 아테네로 날아가 니코스 코치아스 그리스 외무장관과 회담했다. 미국은 그리스의 심각한 부채 위기가 역내 지정학적 위협으로 발전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그리스와 유로존 채권단의 협상이 틀어지고 그리스의 재정 파탄이 유럽연합과의 관계 단절로 이어지면, 그리스가 결국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서방의 군사협력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동남부 방면이 취약해지면서 유럽에 대한 중동지역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안보 위협이 커질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17일 “채무상환과 유로존 잔류를 위한 그리스의 악전고투가 위험한 벼랑끝 전술로 치닫고 있으며, 그리스와 독일의 ‘말의 공방전’ 너머로 외교의 흑마술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 집권당인 급진좌파 시리자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시리자 정부는 자국이 유로존에서 축출될 경우 러시아를 전략적 보호국으로 삼을 수 있음을 공공연히 내비쳐왔다. 그리스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우파 민족주의 성향의 그리스독립당 대표인 파노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지난달 “우리는 협약을 원하지만 독일이 딱딱한 태도를 지속하고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른 나라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플랜 B’(다른 대안)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러시아 역시 자국의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지원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흔쾌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리스 외무차관은 “새 정부 출범 직후 러시아와 중국이 경제적 지원을 제안했지만 아직 우리가 요청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긴축 완화와 긴급자금 지원을 뼈대로 한 구제금융 재협상 필요성을 다시 한번 역설할 예정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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