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정경유착 부패 스캔들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7일 마나우스에 있는 이 회사의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나우스/신화 연합뉴스
60여년간 브라질 석유 산업 독점
GDP의 13% 차지 남미권 최대기업
신용등급 강등·영업이익 급감 위기
뇌물혐의 옛 경영진·외국기업 수사
초대형 정경유착 비리로 국정조사도
GDP의 13% 차지 남미권 최대기업
신용등급 강등·영업이익 급감 위기
뇌물혐의 옛 경영진·외국기업 수사
초대형 정경유착 비리로 국정조사도
“석유는 우리의 것”
1953년 브라질의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가 100% 국영기업으로 출범할 당시 내건 구호였다. 이때 ‘우리’는 브라질 국민이다. 당시 집권 노동당 정부가 브라질의 석유 자원이 외국 자본의 화수분이 아니라 브라질의 국가적 자산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후 60여년 동안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의 유전개발과 정유사업, 유류 도소매업까지 독점하면서 브라질 경제의 기관차이자 남미권 최대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1990년대 중반 아시아와 남미의 외환위기가 확산되면서, 브라질도 공기업 민영화와 석유시장 개방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당시 페트로브라스는 민영화 대신 일부 자본개방을 허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금도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정부와 브라질개발은행, 브라질 국부펀드가 전체 지분의 60% 이상을 보유해 국영기업에 가깝다. 2013년 매출은 1414억6200만달러(약 156조원), 영업이익은 162억1400만달러(약 18조원)에 이른다.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에서 페트로브라스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3%나 된다.
페트로브라스가 설립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 브라질 국민들은 ‘우리’가 누군지 되묻고 있다. 이는 ‘브라질의 석유는 누구 것인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브라질 정가와 재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부패와 뇌물 스캔들 때문이다. 페트로브라스는 정경유착 비리, 국제유가 하락, 주가 폭락과 영업이익 급감 등 숱한 악재가 겹치면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해 10월 페트로브라스의 신용등급을 Baa2로 한 단계 낮추고 추가 강등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문제는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추문이 일개 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브라질 경제 전체에도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점이다.
위기가 움튼 것은 2008년 브라질 정부가 남대서양 연안에서 발견된 심해유전 개발을 적극 추진하면서부터다. 당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노동자당)은 그 사업이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페트로브라스의 독점력을 회복하고 브라질 경제를 일으킬 기회라고 봤다. 정부는 페트로브라스에 신규 유전의 독점개발권과 최소 30%의 지분을 보장해줬다. 대신 유전 설비의 최대 85%를 국산 제품으로 쓰도록 했다. 관련 산업이 호황을 맞고, 흥청망청 돈이 돌았다. 해안에는 정부의 저금리 대출을 받은 조선소들도 우후죽순 들어섰다. 불과 몇년 사이에 새 일자리가 7만4000개 만들어졌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페트로브라스 사업의 후광이 컸다. 그러나 페트로브라스는 집권 노동자당과 브라질 정국을 뒤흔들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거액의 입찰 비리와 리베이트, 공금 유용과 특혜 시비,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 정경유착의 폐해가 한꺼번에 벌어졌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10월 브라질 대선 당시, 중도우파 성향의 브라질사회민주당 후보 아에시우 네베스는 호세프 정권의 부패 추문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공세를 펼쳤다. 집권 노동자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페트로브라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돈세탁을 했으며, 호세프 대통령은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던 노동자당 정권도 꼬리를 무는 의혹과 야권의 공세를 마냥 외면할 순 없었다.
결국 지난 5일 브라질 의회는 페트로브라스 비리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국정조사위원회를 하원에 설치하기로 했다. 뉴스통신사 <아젠시아 브라질>은 “‘세차 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국정조사는 2005~2015년 동안 페트로브라스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페트로브라스의 카르텔(기업담합), 건설사와 정치인, 페트로브라스 고위 경영진이 연루된 뇌물수수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된 사건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조사특위가 결정된 다음날인 6일, 페트로브라스의 전 고위 간부는 연방경찰 조사에서 지난 2003년부터 2013년 사이 집권 노동자당에 많게는 2억달러의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다고 진술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페트로브라스 이사회도 이날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최고위 경영진 6명을 전격 교체했다.
그러나 부패 추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브라질 경찰은 페트로브라스에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등을 수주하는 대가로 경영진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드러난 기업인들을 체포했다. 또 검찰은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가 드러난 기업인들을 기소했다. 돈세탁을 거친 불법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5일 영국 최대의 자동차·항공기 엔진 제조사인 롤스로이스가 페트로브라스에 가스터빈 납품 계약을 맺는 대가로 수십억달러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가 포착돼 수사당국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브라질 세무당국은 페트로브라스의 임직원 수십명이 홍콩상하이은행(HSBC) 스위스 지점에 미신고 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를 시작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상당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페트로브라스는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이 브라질 경제와 정치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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