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영국 런던의 명소 ‘런던 아이’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섰다. 연례 안전 점검을 위해 문을 닫았던 짧은 휴지기를 마치고 재개장한 이튿날이었다. “자~ 여기 칫솔을 받으세요. 런던 아이가 설탕 가득한 음료회사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기념입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칫솔 아저씨’를 올려다봤다. ‘칫솔 아저씨’는 영국에서 어린이 건강 식생활 운동을 해온 맬컴 클라크였다. 클라크와 동료들은 이날 런던 아이에 놀러 온 가족들에게 500개의 칫솔을 나눠줬다. 영국에서 매주 충치로 병원을 찾는 5~9살 어린이의 수에 맞춰 준비했다.
영국항공이 1999년 새천년을 기념해 세운 135m 높이의 회전관람차 런던 아이는 5년 동안만 운영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런던의 명소로 자리잡으며 철거를 면했다. 이후 이디에프(EDF) 에너지 등의 후원으로 런던의 하늘을 장식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런던 아이는 ‘코카콜라 런던 아이’가 됐다. 회전관람차 바퀴에 달린 32개의 관람용 캡슐마다 코카콜라 상표가 붙었다. 진행 요원들은 모두 빨간 웃옷을 입고 코카콜라 모자를 썼다. 10년 넘게 런던의 밤하늘을 파랗게 수놓았던 바퀴는 이제 붉게 빛난다. 코카콜라의 상징이다.
영국 리버풀대학의 사이먼 케이프웰 박사는 “(런던 아이 후원 계약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은 더 이상 담배회사들의 스폰서십은 용인하지 않는데 왜 설탕음료회사의 후원은 참아야 하는 것이냐”고 <가디언>에 물었다. 영국 등에서는 흡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담배회사의 광고와 후원은 공공장소에서 퇴출됐다.
런던의 명소에 대한 기업 후원 논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영국 석유회사 비피(BP)의 후원을 받아 환경운동가들의 표적이 됐다. 3년의 정보공개 청구소송 끝에 법원은 지난달 27일 비피의 후원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액수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테이트 모던이 비피한테서 17년간 후원받은 금액은 380만파운드(약 62억8000만원)로, 연간 22만4000파운드가량이었다. 테이트 모던 1년 예산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소송을 주도했던 단체 플랫폼은 “지난 26년간 테이트 곳곳에 비피의 로고가 붙어 있어서 엄청난 후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개된 액수를 보니 쉽게 대체 가능할 것”이라고 <비비시>(BBC) 방송에 말했다. 이들은 비피가 2010년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건 등 환경 파괴 회사라는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문화계를 후원한다고 비판했다. 비피는 2012년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 대영박물관과 로열오페라하우스 등에 2017년까지 1000만파운드(약 166억원)를 후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불을 붙였다.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는 에미레이트항공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10년간 3600만파운드(약 595억원)짜리 후원 계약을 맺었는데, 인근 두 곳 전철역명 앞에 ‘에미레이트’가 붙기도 했다. 런던시가 운영하는 공용 자전거에는 후원사 금융기업 바클레이스의 로고가 선명하다. 남서부 원즈워스 지역위원회는 템스강에 새 교량을 건설해줄 기업을 찾고 있다.
영국 공중보건학회 부회장인 존 미들턴 박사는 “공공시설물마다 기업들의 상업적 이해가 스며들기 전에 광고 제한에 대한 공론화와 토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홍보전문가 조너선 가베이는 공공프로젝트에 대한 기업 후원은 “현대 소비사회에서 점점 익숙해질 것”이라며 “완벽히 브랜드화될 소비자 삶의 일부”라고 반박한다. 논쟁은 당분간 런던을 달구겠지만, 전세계 다른 지역들도 이런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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