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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으로 들어온 로봇, 축복일까 재앙일까

등록 2015-01-25 19:57수정 2015-01-26 17:21

지난해 6월 일본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가 개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6월 일본 소프트뱅크가 출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가 개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누리집 갈무리
노인 돌보미 로봇 이미 실용화
원격진료·간호사 로봇 개발중
인간과 감정 교류할 인공지능도
2013년 가정용 로봇 판매 28%↑
너무 똑똑하면 인간 위협 경고
“손 회장님, 웃는 얼굴이 멋지네요.”

“고마워. 페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해 6월 일본 도쿄 기자회견장에서 로봇 ‘페퍼’를 소개하면서, 페퍼와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소프트뱅크는 “페퍼가 세계 최초의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2월1일부터 19만8000엔(약 182만원)에 판매되기 시작하는 페퍼는 겉모양만 봐서는 일본의 다른 회사들이 그동안 개발해왔던 여느 로봇보다 그리 우월한 점을 찾기 어렵다. 키 120㎝의 어린아이 모양을 한 페퍼는 두 발로 걷지 못하고 바퀴로 이동하며, 얼굴에 표정이 풍부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소프트뱅크는 페퍼의 장점이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해 인간과 교류하며 스스로 성장해 갈 수 있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페퍼의 성격도 이를 사용하는 가족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일본에서 페퍼는 특히 양로원 등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35년이면 부족한 노인 돌봄 인력이 약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힐 만큼, 일본에서 노인 돌봄 인력 부족은 절박한 문제다. 페퍼 개발에 참여한 소프트뱅크의 하야시 가나메는 <요미우리신문>에 “우리는 노인의 일상생활을 돕고 대화를 촉진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페퍼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페퍼 말고도 최근 고령자 생활 지원용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대학이 개발해 지난해 12월부터 선보인 로봇 ‘슈안’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운동 시범을 하는 일종의 코치 구실을 하고 있다. “오른쪽 팔을 드세요” 같은 말과 함께 동작을 선보이는데, 노인들은 혼자 운동하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전했다. 일본 로봇회사 사이버다인이 개발한 로봇 ‘할’은 뇌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이용해, 노약자가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게 도와준다.

일본 도시바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에 선보인 게이샤 로봇 ‘지히라 아이코’의 모습.
일본 도시바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에 선보인 게이샤 로봇 ‘지히라 아이코’의 모습.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이 샌프란시스코 미션베이에 다음달 1일 개원할 예정인 유시에스에프(UCSF) 메디컬센터에는 ‘이브’ 등으로 불리는 로봇 25대가 배치될 예정이다. 이 로봇들은 음식과 의약품 등을 배달하기 위해 개발됐는데, 메디컬센터의 구조가 상세하게 입력돼 있어 최단 이동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동 경로 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비켜주세요”라고 말하는 ‘센스’도 있다. 미션베이의 메디컬센터는 축구장 3개를 합쳐놓은 크기이기 때문에, 이브와 같은 로봇을 활용하면 인간의 일손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단순한 의약품 운반이 아니라 간호사 구실을 일정 부분 대신하는 로봇도 개발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의 켄 골드버그 교수는 에볼라 감염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의사가 에볼라 감염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고 로봇을 이용해 원격으로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는 로봇은 수개월 안에 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골드버그 교수는 예상한다. 앞으로 몇년 안에는 로봇이 에볼라 감염 환자의 피를 뽑거나 정맥주사를 놓을 수도 있다고 그는 전망한다.

일본 도시바가 이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선보인 게이샤 로봇 ‘지히라 아이코’는 노래와 대화가 가능하다. 지히라 아이코의 장점은 다양한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인데, 도시바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인간과의 소통 실현”이 개발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로봇은 ‘2개 이상의 축을 갖고 주어진 환경에서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기계 장치’로 정의된다. 로봇은 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크게 나뉜다. 산업용 로봇의 비중이 아직은 훨씬 큰 편이지만, 인간과 직접 접촉하는 정도는 서비스용 로봇 중에서도 가정용 로봇이 가장 크다. 국제로봇공학연맹(IFL)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가정용 로봇은 2013년에 약 400만대가 팔려 2012년에 견줘 판매가 28% 늘었다. 로봇이 작업장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점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로봇과 접촉할수록 의사소통과 감정 교류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되고, 이는 인간처럼 학습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동기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은 여러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지만, 과학이 더 발전하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개발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개발의 위험성을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나오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게 아니라, 현실적 위협으로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 13일 안전한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삶의미래연구소(FLI)에 100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삶의미래연구소는 인공지능을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개발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로, 지난 11일 인터넷에 인공지능 개발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편지를 띄운 곳이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큰 존재론적 위협은 아마도 인공지능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 개발이 인류 멸망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킹은 지난해 12월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개량하고 도약할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 속도가 늦어 인공지능과 경쟁할 수 없고 대체되고 말 것”이라고 경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관련 영상] 로봇과 독거노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체인징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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