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서부텍사스유(WTI)와 중동산 두바이유가 결국 배럴당 40달러대로 완전히 내려섰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50달러대 턱걸이여서 40달러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6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 2월 인도분은 4% 이상 급락하며 47.8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전날 장중에 40달러대로 무너졌다가 50달러대로 반등해 장을 마감했으나 장외 전자거래에서 40달러대 매매를 이어가더니 결국 50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는 같은 날 각각 48.08달러와 51.10달러로 내려섰다.
유가 급락엔 미국의 셰일에너지 증산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가 기존의 공급조절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빚어진 ‘공급 과잉’ 사태가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글로벌 디플레이션 우려의 중심에 서 있는 유럽의 ‘수요’ 상황이 녹록지 않은 사정도 있다. 이 때문에 유가 급락은 공급 측면의 문제 외에도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한 디플레이션의 징후로도 읽히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12월 보고서를 보면, 최근 몇년간 계속된 유럽의 원유 수요 약세를 지적하고 있다. 2014년에도 유럽의 하루 원유 수요는 전년에 견줘 1.3% 감소했던 것으로 잠정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강유진 엔에이치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유럽의 정유업체들이 미국 업체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수출 시장을 잃은 탓도 있지만 유럽 내부의 원유 수요 자체가 위축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원유 수요뿐 아니라 유럽 물가 지표에서도 경기 후퇴와 침체의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7일(현지시각) 잠정 발표된 12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 같은 달에 견줘 -0.2%를 기록했다. 이는 11월 상승률(0.3%)보다 크게 낮아진 것이고, 시장 예상치 -0.1%를 밑도는 수치다. 이 지표는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6~11월 마이너스로 진입해 하락폭이 -0.6%까지 커진 적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유로존은 유가 등의 영향을 제거한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이 금융위기 때보다 낮아지기까지 했다. 전년 같은 달에 견준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은 2013년 10월 이래 1% 이하에 머물면서 11월 0.7%까지 내려왔고, 12월에는 0.8%를 기록했다. 이는 금융위기 여파 때의 최저치이던 0.8%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이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애널리스트는 “분기별로 본 유로존의 총수요는 거의 제로 성장 상태로 현재 인플레이션 기대가 떨어진 지가 꽤 됐다”며 “저금리와 저유가란 조건이 저성장과 맞물려 ‘뉴 노멀’(새롭게 부상하는 표준)로 와 있는 점이 이전 저유가 시대와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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