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재협상·긴축 폐기 공언
그리스 급좌 시리자 집권 가능성
독일·프랑스 ‘협정 지켜야’ 강경
탈퇴 현실화땐 도미노 사태 우려
그리스 급좌 시리자 집권 가능성
독일·프랑스 ‘협정 지켜야’ 강경
탈퇴 현실화땐 도미노 사태 우려
유가 급락의 충격과 함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5일(현지시각)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 가치는 장중 한때 2006년 3월 이후 최저치인 유로당 1.1864달러까지 급락했다. 유로 가치가 8년10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진 것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가 진행되던 2012년 유행했던 낱말인 그렉시트가 다시 금융시장을 흔들기 시작한 것은 오는 25일 치러질 예정인 그리스의 조기총선에서 야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리자는 집권하면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와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고 긴축재정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에 대해 유로존을 이끄는 독일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 주말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유로존이 유럽 재정위기 이후 충분한 개혁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도 대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감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파문이 일자 메르켈 총리 쪽 대변인은 5일 “우리 목표는 그리스를 포함한 모든 회원국과 함께 유로존을 안정화하는 것”이라며 <슈피겔> 보도와 선을 그었다. 하지만 쇼이블레 장관은 이날 <하노버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협박에 약하지 않다”며 “누가 그리스에서 집권하든 유럽연합과 그리스가 맺은 협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경 발언을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맺었던 협정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당장 이탈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시리자도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리스 신문 <엘레프세로스 티포스>가 지난달 29~30일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리자 지지율은 현 집권여당인 신민주당에 3.1%포인트 앞서는 정도다. 시리자가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승리한다 하더라도 다른 중도 정당들과 연정이 불가피해 그리스 부채 탕감 같은 민감한 주장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렉시트 우려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시리자가 집권하면 구제금융 재협상을 시도할 텐데,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그렉시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상 첫 유로존 탈퇴라는 선례로 이어지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같은 나라들에서도 유로존 반대 정당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스 유로존 탈퇴 자체는 독일의 기대대로 당장 치명적 결과를 낳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로존과 유럽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다른 나라도 그럴 수 있다. 이는 유로존은 붕괴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무너뜨린다”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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