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제1야당 당수 치프라스의 도전
조기총선 땐 급진좌파 집권 가능성 커
치프라스, 긴축재정 정책 폐지 주장
“집권 땐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 공언
독일 주도 경제질서 거부 뜻 밝혀와
유로존 잔류 땐 실현 가능성 의문도
조기총선 땐 급진좌파 집권 가능성 커
치프라스, 긴축재정 정책 폐지 주장
“집권 땐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 공언
독일 주도 경제질서 거부 뜻 밝혀와
유로존 잔류 땐 실현 가능성 의문도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포퓰리스트”, “유럽의 우고 차베스”.
서구 언론들이 그리스 제1야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40살 젊은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에게 붙인 별명들이다. 그리스 집권 중도우파 신민주당이 최근 조기 대통령선거를 깜짝 선언하면서, 유럽 금융시장에서는 치프라스가 이끄는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을 잠재적 위협이 아닌 현실적 두려움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에서 대통령은 집권당이 후보를 추천해서 의회에서 승인을 받는 상징적 국가원수에 불과하지만, 모두 3번의 기회 동안 대통령 선출이 부결되면 오는 2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시리자의 지지율이 신민주당을 앞서기 때문에, 독일 언론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지칭했던 치프라스가 총선에서 승리해 그리스를 이끌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스는 29일 300명 의원 중 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극적으로 통과되더라도 신민주당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시리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될 판이다.
치프라스는 시리자가 집권하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 국가들)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독일이 주도하는 유로존 경제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신민주당의 조기 대선 선언이 있었던 9일 그리스 증시가 1987년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인 12.8% 떨어지고, 유럽 증시도 하락한 이유는 시리자의 집권을 유럽 금융가가 그만큼 우려한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시리자가 집권하면 유로존은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아니면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내쫓는 방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리자를 이끄는 치프라스는 그리스 학생운동계의 스타였다. 그리스 군사정권이 붕괴한 사흘 뒤인 1974년 7월28일 태어난, 그리스 민주화 이후 세대에 속한다. 1991년 그리스 우파 정부가 추진했던 교육개혁에 반대해 17살의 치프라스는 교실 점거농성을 주도했다. 당시 그와 같이 교실 점거농성을 했던 마타이오스 치미타키스는 “치프라스는 점거농성의 목적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학생들과의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줄 알았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말했다. 당시 그는 청년 공산주의 조직에 가입해 있었다. 고등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다 만난 여성과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름에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를 넣기도 했다. 그는 2008년 학생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오쩌둥이 일으킨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해 “공산 정권 아래서 엄청난 자유의 박탈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고 중심에 인간성은 있었다”고 말했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가디언>은 그가 특히 자신과 생일이 같은 우고 차베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치프라스는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서면서부터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약체 정당이었던 시리자의 후보로 나서 시장 선거 3위를 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3년 뒤인 2009년 시리자 당 대표가 됐으며, 2012년 총선에서는 시리자가 득표율 22%로 제1야당으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2013년에는 유럽 좌파 정당들의 추천으로 유럽집행위원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다. 시리자는 올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26.57%로 집권 신민주당(22.72%)을 누르고 1위를 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펄스 폴’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리자 지지율이 28.5%로 신민주당 25%에 비해 3.5%포인트 높았다.
치프라스는 최근 <로이터> 인터뷰에서 “시리자가 집권하면 (유럽중앙은행과 유럽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에서 받은) 구제금융 조건을 놓고 재협상할 것”이라며 “그리스가 진 채무 중 상당액을 탕감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동의를 통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재정위기 때문에 2010년부터 긴축재정의 대가로 트로이카에서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는 올해 4월 4년 만에 처음으로 5년 만기 국채를 발행해 국제 자본시장에 복귀함으로써 구제금융 조기졸업을 추진해 왔으나 최근 다시 국채 이자율이 치솟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마라스 총리가 조기 대선 카드를 빼든 이유도 구제금융 조기졸업이 어려워지자 던진 승부수였다.
치프라스는 지난해 <르몽드> 기고문에서 “1953년 독일이 빚더미에 올라 다른 나라들까지 몰락할 위기에 놓이자 채권국들이 독일의 명목가치 기준 누적 부채를 60% 탕감해줬다”며 “독일 부채 탕감을 위한 런던 회의를 본떠 그리스 부채 탕감을 위한 유럽 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또 “부채 상환 유예와 성장 조약을 신설해 부채 상환으로 인한 경제재건의 길이 차단되는 것을 방지하자”며 “부채 상환을 유예할 수 없다면 그리스가 아무리 금융을 건전화해도 그리스는 영원토록 실패를 거듭하는 ‘시시포스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치프라스는 “우리는 1년에 이자로만 100억유로씩 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성장이 없다면 위기 극복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그는 그리스 내부적으로는 부유세 신설, 최저임금 인상, 해고된 공공부문 노동자 재고용, 부유층과 기업이 누리고 있는 각종 세금 감면 혜택 철회를 주장했다. 2012년 <가디언> 인터뷰에서는 그리스 상황을 “민중과 자본주의 사이의 전쟁”이라고 묘사했고, “우리는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비전이 있다”고 말했다.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어조가 점점 누그러들고는 있지만 그리스 상황 타개를 위해서 긴축재정을 던져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대로다.
그러나 치프라스가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류시키면서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유로존을 주도하는 독일은 재정건전성을 유로 사용 조건으로 주장하고 있어, 치프라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치프라스가 긴축재정에 지친 그리스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장을 반복한다며 그를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금융가에선 치프라스가 집권해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과거 그리스 정당들이 집권하면 흔히 공약을 뒤집었던 탓이다. 사마라스는 총리가 되기 전 그리스 구제금융 자체를 반대한 전력이 있고, 사회당은 그리스의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하다가 1981년 집권하자 그리스를 유럽연합에 가입시켰다. 투자자문회사인 펜탈파 캐피털의 니콜라 마리넬리는 “시리자가 총선에서 이겨도 그리스 자산은 단기적으로 저평가될 뿐”이라며 “오히려 그리스 자산을 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치프라스는 내부적으로도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시리자는 원래 마오쩌둥주의자, 생태주의자, 사민주의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좌파들의 연합으로 지난해에야 통합정당이 됐다. 당내 다양한 의견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같은 좌파라도 사회당은 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고, 공산당도 시리자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시리자의 지지율이 신민주당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시리자가 총선에서 1당이 돼도 연정을 구성하지 못할 수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당시 금 모으기 운동 등을 벌였던 우리와 달리 그리스는 구제금융 당시 광범위한 반대시위가 일어났다. 그리스는 이후 구제금융을 받아들였지만, 이제 또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치프라스와 시리자는 유로존 금융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리스 조기 대선 2차 투표가 부결됐던 17일 아테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테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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