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리포트] TPP와 미-중 경제 전쟁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합류한 베트남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중국과 경제적으로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 베트남 주요 산업인 섬유·의류업의 경우 미국이 수출 시장 1위다. 반면에 의류 생산에 사용되는 원사와 직물은 중국에서 각각 20%, 40%가량을 수입한다. 중국에서 원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해 완성품을 만든 뒤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다.
티피피가 출범하면 이 구조가 크게 변한다. 미국의 수입관세는 17%에서 무관세로 전환돼 베트남의 섬유·의류 대미 수출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반면, 중국에서 수입하는 원재료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른바 ‘원사 기준 원산지 판정 방식’(얀 포워드 규정) 같은 엄격한 조항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역내에서 생산한 원사를 사용해 최종 완제품으로 수출할 때까지 모든 공정을 역내에서 수행해야 하는 규정을 말한다. 중국산 원재료를 쓸 유인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베트남 섬유·의류협회는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현재 연 7% 성장에서 티피피 이후엔 12~1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티피피가 막바지 협상 단계에 들어가면서 섬유·의류업에서는 이미 투자 흐름이 바뀌고 있다. 대중국 투자가 줄고, 베트남 직접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코트라 베트남무역관은 동향보고에서 “티피피 협상 시작 이후 3억5000만달러 이상의 외국인 직접투자 자본이 베트남 섬유산업으로 유입됐다”며 “특히 중국·홍콩·일본·한국 기업들의 대형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내 무관세로 상품수출 경쟁력
단, 원료-제조 모두 역내일 때만
중국과 교역·투자 줄어들수밖에
협상 막바지 벌써 투자흐름 변화 미국식 시장규범 분야도 포함
국유기업 특혜 폐지는 중국 겨냥
가장 큰 혜택 미국, 손해는 중국
“결국 중국도 가입할 것” 관측 섬유·의류업 사례는 티피피가 출범할 경우 아시아·태평양에서 수출입과 투자 흐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세력 판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채 티피피 협상에 속도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협상팀으로부터 협상 내용을 설명받은 워싱턴 싱크탱크 소식통은 “미국은 티피피를 통해 중국 주변국들의 대표 상품 경쟁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며 “티피피가 출범하면 아·태 무역에서 1(중국) 대 12(티피피 회원국) 간 경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의류업에서는 베트남 외에도 말레이시아·멕시코도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농산물과 식품에서는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반도체·전자부품에서는 멕시코·싱가포르·캐나다, 통신장비에서는 말레이시아·멕시코·베트남·캐나다 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개별 국가로 경쟁하면 중국에 뒤질 수밖에 없지만, 12개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면 중국이 오히려 불리해진다. 미국은 관세 인하·철폐 외에도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티피피 협상에는 국유기업 특혜 폐지와 투자자-국가 소송제 도입,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노동·환경 기준 강화 등 이른바 ‘시장 규범’ 분야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이를 ‘국제 규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 연설에서 “티피피는 21세기 무역에 맞는 높은 수준의 협정”이라며 “역사적인 성취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 규범 분야에서도 미국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대표적인 게 국유기업의 특혜 폐지 조항이다. 국유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산업생산과 고용의 26%와 25%, 중국 은행들의 대출잔액 가운데 49%나 차지한다. 대표적인 자유무역 주창자인 프레드 버그스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저서 <태평양에 다리놓기>에서 “중국 국유기업들은 거대한 규모, 융자 혜택 등으로 국내외에서 큰 이점을 갖는다”며 “중국 공산당과 국유기업 경영진이 밀접히 연계돼 있어 정치적 이해도 개입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티피피 협상에서 사기업과 국유기업이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유기업 문제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민감한 쟁점이다. 협상의 성패는 미·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시장 개방 폭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과도 맞물려 있다. 일본이 농산물과 섬유·의류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그 혜택을 입을 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이 국유기업 같은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 의회의 신속협상권(TPA) 통과 시기에 맞춰 마지막 카드를 내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통상업계에선 미 의회가 내년 2월께 신속협상권을 통과시키고, 티피피 협상 타결은 내년 상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나라는 미국, 가장 손해를 보는 나라는 중국이다. 티피피 효과와 관련해 싱크탱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피터 피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 등 3명의 연구)를 보면, 티피피가 12개국으로 출범하면 미국은 연 1235억달러의 수출 증가, 중국은 연 437억달러의 수출 감소 효과를 보게 된다. 16개국이 되면 미국은 1905억달러(약 212조원) 증가, 중국은 1078억달러(약 120조원) 감소한다. 워싱턴에선 이런 파급효과 때문에 중국이 결국은 티피피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이 나온다. 성영화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중국의 행보와 관련해 여러가지 얘기들이 나돌지만 중국이 티피피 가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티피피 협상 타결과 중국의 가입 여부는 앞으로 아시아 경제 판도를 크게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단, 원료-제조 모두 역내일 때만
중국과 교역·투자 줄어들수밖에
협상 막바지 벌써 투자흐름 변화 미국식 시장규범 분야도 포함
국유기업 특혜 폐지는 중국 겨냥
가장 큰 혜택 미국, 손해는 중국
“결국 중국도 가입할 것” 관측 섬유·의류업 사례는 티피피가 출범할 경우 아시아·태평양에서 수출입과 투자 흐름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시아 세력 판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채 티피피 협상에 속도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 협상팀으로부터 협상 내용을 설명받은 워싱턴 싱크탱크 소식통은 “미국은 티피피를 통해 중국 주변국들의 대표 상품 경쟁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며 “티피피가 출범하면 아·태 무역에서 1(중국) 대 12(티피피 회원국) 간 경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섬유·의류업에서는 베트남 외에도 말레이시아·멕시코도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농산물과 식품에서는 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반도체·전자부품에서는 멕시코·싱가포르·캐나다, 통신장비에서는 말레이시아·멕시코·베트남·캐나다 등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개별 국가로 경쟁하면 중국에 뒤질 수밖에 없지만, 12개국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면 중국이 오히려 불리해진다. 미국은 관세 인하·철폐 외에도 미국식 경제시스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티피피 협상에는 국유기업 특혜 폐지와 투자자-국가 소송제 도입,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노동·환경 기준 강화 등 이른바 ‘시장 규범’ 분야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이를 ‘국제 규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 연설에서 “티피피는 21세기 무역에 맞는 높은 수준의 협정”이라며 “역사적인 성취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 규범 분야에서도 미국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대표적인 게 국유기업의 특혜 폐지 조항이다. 국유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산업생산과 고용의 26%와 25%, 중국 은행들의 대출잔액 가운데 49%나 차지한다. 대표적인 자유무역 주창자인 프레드 버그스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저서 <태평양에 다리놓기>에서 “중국 국유기업들은 거대한 규모, 융자 혜택 등으로 국내외에서 큰 이점을 갖는다”며 “중국 공산당과 국유기업 경영진이 밀접히 연계돼 있어 정치적 이해도 개입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티피피 협상에서 사기업과 국유기업이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유기업 문제는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민감한 쟁점이다. 협상의 성패는 미·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시장 개방 폭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과도 맞물려 있다. 일본이 농산물과 섬유·의류 시장을 대폭 개방하면, 그 혜택을 입을 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이 국유기업 같은 다른 분야에서 양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 의회의 신속협상권(TPA) 통과 시기에 맞춰 마지막 카드를 내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통상업계에선 미 의회가 내년 2월께 신속협상권을 통과시키고, 티피피 협상 타결은 내년 상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나라는 미국, 가장 손해를 보는 나라는 중국이다. 티피피 효과와 관련해 싱크탱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자료(피터 피트리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 등 3명의 연구)를 보면, 티피피가 12개국으로 출범하면 미국은 연 1235억달러의 수출 증가, 중국은 연 437억달러의 수출 감소 효과를 보게 된다. 16개국이 되면 미국은 1905억달러(약 212조원) 증가, 중국은 1078억달러(약 120조원) 감소한다. 워싱턴에선 이런 파급효과 때문에 중국이 결국은 티피피에 가입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이 나온다. 성영화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중국의 행보와 관련해 여러가지 얘기들이 나돌지만 중국이 티피피 가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티피피 협상 타결과 중국의 가입 여부는 앞으로 아시아 경제 판도를 크게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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