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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경제

유가와 환율은 누구의 등에 비수가 되나

등록 2014-11-28 19:47수정 2014-11-28 22:00

지난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오펙) 회담에서 일부 회원국들의 감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PA 연합뉴스
지난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오펙) 회담에서 일부 회원국들의 감산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PA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1970년대 소련은 군사적 개입을 통한 공격적인 팽창을 했다. 베트남, 앙골라, 에티오피아, 모잠비크, 예멘, 리비아, 캄보디아, 니카라과, 그레나다, 쿠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략 핵무기에서도 양적으로 미국을 능가했다. 미국의 전략 미사일 발사체 수는 60년대 중반부터 15년간 정체한 반면, 소련은 거의 7배나 늘었다. 대륙간미사일 탄두는 거의 20배나 증가했다.

60년대초부터 경제가 정체된 소련의 국력 과잉전개는 붕괴의 원인이었다. 60년대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을 지켜온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음지에서>라는 저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소련의 비밀은 유가였다. 70년대 유가 급등은 당시 최대 산유국이던 소련한테 이런 국력의 과잉전개를 지탱해줬다.

반면 미국은 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전과 오일쇼크를 겪으며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과잉전개됐던 국력을 축소해야만 했다. 미-중 화해에 이어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축소하는 한편 전략무기도 재편했다. 이는 미국 국력의 구조조정이었다. 미국은 전략무기의 질적 개선으로 눈을 돌렸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엠엑스(MX), 공중 및 해상 발사 크루즈 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등은 이때 개발을 시작했다. 게이츠는 70년대 중반, 유약하다는 평가를 들은 지미 카터 민주당 행정부가 사실은 소련 붕괴의 기초를 닦아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에 넘겨줬다고 지적했다.

80년대 중반 유가가 실질가격으로 70년대말에 비해 25%까지 떨어지자, 소련은 체제 와해가 시작됐다. 또 하나의 변수인 환율이 끼어들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서 미국은 급격히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고 일본의 엔화를 절상했다. 1달러당 250엔이던 환율은 2년 만에 절반인 125엔으로 떨어졌고, 1995년말이 되면 80엔대까지 갔다.

일본은 평가절상된 엔화에 취해 버블이 일며, 그 후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디플레성 복합불황에 빠져들었다. 미국은 일본의 팔을 비틀어 얻어낸 달러화 평가절하로 나름대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는 90년대 이후 미국이 누린 전후 최장기 호황의 바탕이 됐다.

유가와 환율이 다시 중대한 변곡점에 처했다. 석유수출국기구(오펙)가 27일 일부 회원국들의 감산 요구를 거부하고, 기존 생산 쿼터를 준수하기로 했다. 쿠웨이트의 알리 살리흐 우마이르 석유장관은 “배럴당 100달러든, 80달러든, 60달러든 어떤 시장가격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지역 왕정을 중심으로 가격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의미이다.

미국에 껄끄러운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가 가장 큰 타격이다. 러시아는 유가 폭락과 경제제재로 한해에 1400억달러를 손해 본다는 분석이다. 러시아도 감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맞불을 놓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사우디와 러시아가 미국의 셰일에너지 개발을 무력화하려고 가격전쟁을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얘기도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폭락하는 유가의 최대 변수는 환율이다. 엔화는 2012년말 달러당 70엔대에서 현재 120엔대를 바라보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25일 “환율은 경제나 금융의 펀더멘털을 반영해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아소 다로 재무장관도 21일 엔화 절하가 “너무 빠르다”며 “이에 의문의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엔화 절하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기회복이 양호한 편이다. 강한 달러는 미국으로 자금을 더 쏠리게 하는 바탕이다. 유가 폭락이 미국의 셰일에너지 사업에 타격을 주겠지만, 미국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강한 달러와 싼 유가는 미국의 내수경제를 활성화한다. 유가와 환율을 가지고 상대의 등에 비수를 꽂는 전쟁은 이제 시작됐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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