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경기확장 정책 방해 비판
국가에 적극적인 재정정책 주문
국가에 적극적인 재정정책 주문
“불황에 저인플레 경제에서도 통화긴축을 요구하는 우리 정치체제의 강력한 파벌을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그들을 디플레이션 도당이라고 부르자.”
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에 대한 경고를 주도한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였다. 그는 지난 9월 <뉴욕 타임스>에 실은 칼럼 ‘디플레이션 코커스(도당)’에서 현재의 디플레 위기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균형재정 등을 내세우며 경기확장 정책을 방해한 기득권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위기에 대응하려는 양적완화 등 돈풀기 정책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균형재정을 내세워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반대한 이들이 현재의 디플레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그 배후에 그들의 계급적 이익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플레가 채무자에게 이익이고 채권자에게 손해인 반면, 디플레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돈 많은 기득권층은 채권자들이어서 인플레 유발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확장을 방해해 디플레가 심해지면 채권자들 역시 결국에는 손해를 보게 된다고 크루그먼은 경고한다.
디플레는 악순환의 덫을 만든다. 하락하는 물가→위축되는 현금 흐름과 기업 이익→해고와 신규채용 중단, 생산 감소→늘어나는 실업→소비 축소→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물가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덫으로 반복된다.
현재의 디플레 위기를 초래한 2008년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빚이 많아져서 생긴 것이다. 빚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구매력이 없는 상황인데, 물가가 떨어지고 있다면 소비를 더욱 미룬다. 또 은행으로부터 대출도 꺼린다. 그러면 물가는 더욱 떨어지고, 현찰을 그대로 깔고 앉아 있는 것이 그 현찰의 가치를 높이는 투자가 된다. 이는 결국 생산적 투자를 방해해 경기를 더욱 위축시킨다.
디플레는 또 위기의 근본인 채무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채무 부담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채권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채무자들이 소비를 줄이고 파산하게 되면, 채권자들 역시 수익을 얻지 못해 소비를 줄이고 결국에는 채권도 날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임금과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상품 가격이 떨어지고 판매가 저조하면, 기업은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을 삭감하려 한다. 하지만 명목임금은 경직성이 있어 삭감이 쉽지 않다. 기업은 먼저 고용 축소로 대응하고, 이런 고용 축소는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력을 약화시켜 결국에는 임금 삭감으로까지 이어진다.
디플레 덫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현재 위기의 근원인 채무 부담을 경감해줘야 한다고 크루그먼은 주장한다. 그는 통화 확장과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인플레를 유발해서라도 일반 소비자들의 채무 부담을 줄이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균형재정을 앞장서 주장하던 보수적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마저 최근엔 디플레의 위기 앞에서 추가적인 돈풀기와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했고, 유럽연합의 상당수 국가들은 경기확장 정책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며, 독일도 이를 원하지 않는 상황 등 때문에 경기확장 정책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이 잡지는 지적했다. 이런 조처들이 없다면 특히 유럽에서는 유로존 해체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정의길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