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값 속락 사태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수출하는 원유 가격을 인하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80달러선이 붕괴되며, 75달러까지 내려갔다.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 에너지 등 경쟁자들을 고사시키는 가격전쟁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지난 3일 미국의 정유업자들에게 수출하는 12월분 가격을 인하하는 조처를 취했다. 아람코의 이 조처로 4일 미국 인도분 석유값은 2% 하락해 배럴당 77.19달러로 마감했다. 장중 75.84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브렌트유는 2.3% 하락해 82.82달러로 떨어졌다. 장중 한때 82.08달러까지 내려갔다. 이는 4년만에 가장 낮은 가격이다.
사우디의 이런 조처는 석유시장에서 자신의 시장지분을 지키려는 행동으로 해석된다. 일부에서는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양산체제를 갖추려는 미국의 셰일 석유를 고사시키려는 가격전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우디가 “미국에서 시장지분을 지키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석유거래업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며 “일부 거래업자들은 이 조처를 수요와 공급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셰일 석유 생산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들어 셰일 석유와 가스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며,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미국의 셰일 석유 생산은 채산성이 맞지않는다고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셰일 석유 개발업자들은 현재 초기 시설투자로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는 상태다.
사우디가 시장에서 지분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나, 미국의 셰일 석유 등을 겨냥한 가격전쟁을 벌이려는 의도는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에 수출하는 석유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싸서, 이를 조정하는 차원일뿐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해석했다. 미국은 최근 10년 동안 사우디로부터 하루 평균 130만배럴를 수입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들어서는 90만배럴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사우디의 석유값은 미국 정유업자들이 수입하는 다른 지역 석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우디는 미국 수출 석유값을 배럴당 45~50센트 내린 반면에 아시아나 유럽 수출 석유값은 1달러 정도 상향 조정했다. 이는 사우디가 전반적인 석유 공급가를 정비하는 차원이며, 특별히 미국의 셰일 석유나 다른 산유국들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우디에 미국 시장도 중요하기는 하나, 아시아가 훨씬 더 중요하다. 2013년 사우디의 원유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하였고, 아시아는 거의 70%에 달했다. 사우디의 미국 수출 석유가격 인하가 미국의 셰일 석유 생산업자나 다른 석유수출국을 겨냥해 가격전쟁을 선포했다는 신호는 아니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즉 다른 석유 수출국들도 시장지분을 지키기 위해 나설 경우, 가격 인하 전쟁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최근 석유가격 인하 조처는 사우디보다는 이라크나 서부 아프리카 산유국들이 먼저 취했다. 하지만, 사우디 쪽은 이미 석유값 인하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상태이다.
문제는 국제 유가의 바닥이 어디냐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배럴당 80달러선에서 멈출 것이라 예상됐다. 그 이하로 내려가면, 산유국들이 견디지 못할 것이란 분석에 바탕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이후로 25% 이상이 떨어진 국제유가가 앞으로도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대부분 분석가들과 투기업자들이 예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한때 50달러선까지 접근한 사례를 들면서, 그 선까지 추락할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석유값 인하는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추세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