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협정’(FTAAP) 구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는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 뒤 발표될 ‘코뮈니케’(공동선언문)의 초안에서, 애초 중국이 의도했던 아·태 자유무역협정의 ‘타당성 조사 촉구’와 ‘2025년 타결 목표 시한’ 등 2개 항목이 미국의 압력으로 빠졌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2일 협상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의 구상에 어깃장을 놓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은 참여하지 않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자국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 체결될 경우 연간 1080억달러(약 114조원) 규모의 교역 손실을 입게 될 것으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추산했다. 세계 인구의 40%와 총생산(GDP)의 55%를 차지하는 환태평양 시장을 놓고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사활적인 경제패권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턴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교역협상이 병행될 경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각국의 관심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반면, 루펑 베이징대 교수는 “양국이 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가만히 기다리진 않을 테고, 뭔가 다른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태 자유무역협정은 애초 미국의 제안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미국은 2005년 6월 뉴질랜드·싱가포르 등 4개국 체제로 출범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쪽으로 급변침했다. 일본을 비롯한 우방국들을 끌어들이고 중국을 견제하는 자국 중심의 역내 경제질서 재편을 겨냥한 것이다. 현재 이 협상에는 미국·캐나다·일본·말레이시아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뛰어들었으나 아직 협상국 지위를 얻지 못한 상태다.
미국은 중국이 설립하려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 등 역내 경제대국이 참여하는 것에도 부정적이다. 서방이 주도권을 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을 통해 아시아 경제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이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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