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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경제

경기부양이냐 균형예산이냐…쇼이블레는 고민중

등록 2014-10-26 20:17

유럽 경제 끌어온 독일 경기 침체
수출 부진·불황 조짐·고용 먹구름
주변국서 재정지출 확대 요구 높지만
균형예산 공약한 독일 지도부는 반대
‘유럽의 성장 기관차’ 소리를 듣던 독일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수출이 줄고 성장률이 떨어지면서 고용마저 위협받고 있다. 독일이 기침을 하면, 유럽 경제는 몸살을 앓게 된다. 독일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역내 총생산의 28%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대국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은 아직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체력은 바닥인데 역내 유일한 성장 엔진마저 꺼진다면…. 유로존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재앙이다.

독일 정부에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유로존 다른 국가들에서 더 크게 울리는 건 이 때문이다. 엔진을 먼저 달구라는 압박이다. 정작 독일 정부는 뜨뜻미지근하다. 독일 정부도 경기 부양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처방전을 놓고는 다른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독일과 다른 나라 경제 수장들이 직간접으로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독일에선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최전선에 서 있다. 그는 최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 총회 참석차 워싱턴을 찾았다가 ‘이젠 재정 지출을 늘리라’는 외국 장관·전문가들의 일치된 압박에 직면했다. “더 많은 재정 지출로 위험에 빠진다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꿋꿋이 일축했지만, 심기는 무척 불편했을 터다. 독일 <슈피겔>은 “이번 가을 쇼이블레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정도로 방어적인 상태”라며 “요즘 쇼이블레를 화나게 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안 걸린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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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이블레의 주름을 깊게 만드는 근본 요인은 결국 독일 경제의 침체 기미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20일 독일 경제가 3분기에 잘해야 간신히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적으로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 ‘경기 후퇴’(리세션·recession)로 규정하는데, 독일은 이미 2분기에 -0.2% 성장을 기록했다. 이번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바로 불황이 된다. 앞서 독일 정부도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와 2%에서 1.2%, 1.3%로 낮췄다.

독일의 성장 위기는 수출 부진에서 비롯되고 있다. 8월 수출은 전달보다 5.8% 감소했다. 이 영향으로 8월 성장률도 -4%를 기록했다. 자동차 공장들의 휴가가 한꺼번에 몰려 생산이 준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독일 경제의 취약성을 반영하는 수치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짚었다. “독일은 신흥국 수요를 기반으로 기계류 등의 수출을 늘려왔는데, 최근 중국 수요가 줄고 러시아 수요도 서방의 경제 제재로 줄어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멘스 등 기업들이 고용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독일이 자랑해온 높은 고용률 신화도 흔들리고 있다. 실업 증가는 내수 감소로 이어져 ‘경기 후퇴’를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

독일의 경기 침체는 특히 체코·폴란드 등 독일 의존도가 높은 중동부 유럽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8월에 이미 중동부 유럽에서 독일로 향하는 수출 규모가 2.5% 줄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과 중동부 유럽이 휘청이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라틴 유럽 국가들의 경제 회복도 한층 요원해진다.

수출이 어려우니, 재정 지출을 늘려 내수를 떠받치라는 요구에도 쇼이블레를 비롯한 독일 정부 수뇌부는 요지부동이다. 20일 열린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재무장관 회의에선 양국이 동시에 투자 확대와 경제개혁에 나선다는 데 합의를 봤다. 하지만 디테일은 내놓지 못했다. 회의 직전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독일이 2018년까지 500억유로를 더 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쇼이블레는 “투자 확대는 필요하지만,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회의 뒤에도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경제장관은 “독일은 (재정 투여가 아니라) 민간 투자를 증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이 ‘재정만은 못 건드린다’고 맞서는 데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내년도에 ‘균형예산’을 꾸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독일은 1920년대 초고물가에 시달린 경험 때문에 전통적으로 재정 확대보다는 긴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방만한 재정 운용이 유로존 재정위기를 불러왔다는 인식도 독일 사회에 팽배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메르켈 정부는 독일의 재정 완화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을 느슨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정치적으로 균형예산 원칙을 바꿀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고 짚었다.

변수는 쇼이블레로 대표되는 독일 정부의 균형예산 집착에 대한 비판이 독일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투자 부족으로 독일의 도로 등 인프라가 노후화해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에서도 균형예산이 교육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추진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기 침체가 뚜렷해질수록 이런 목소리는 거세질 것이고, 내각 내 가장 완강한 균형예산론자로 꼽히는 쇼이블레의 번민 또한 깊어질 전망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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