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미국자본 유출 틈새노려
에너지·사치품 등에 수조원 투자
에너지·사치품 등에 수조원 투자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맞아 중국 자본이 이탈리아의 사치품 산업과 기간 산업으로 몰려들고 있다.
중국의 국외 투자는 그동안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의 천연자원 분야에 집중됐다. 하지만 2010년 발생한 유럽의 재정위기 뒤 유럽의 세계 정상급 브랜드와 핵심 기간 산업 지분을 좋은 조건에 확보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맞았다. 특히 유명 사치품 브랜드와 높은 기술력의 장치 산업을 함께 거느린 이탈리아가 최대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8일 보도했다.
중국의 이탈리아 투자 금액은 올 들어서만 35억유로(약 4조7000억원)에 이른다. 중국 국영전력회사가 지난 7월 이탈리아의 전력과 가스 유통망을 통제하는 회사인 ‘시디피(CDP) 레티’의 지분 35%를 사들였고, 중국의 국가외환관리국이 이탈리아의 국영 에너지기업 에니와 에넬에 투자한 금액도 20억유로(약 2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중국의 통신장비회사 화웨이는 2008년 중국 이외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 밀라노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최근 이 센터의 규모를 2017년까지 2배로 키우고 고용을 17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해킹 가능성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규제로 미국 시장 접근이 어려워진 화웨이는 대신 유럽에만 모두 5억유로(약 6700억원)를 투자한 상태다.
이탈리아 사치품 산업을 대표하는 호화 요트 제조사 페레티는 2009년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가 중국 자본에 넘어갔다. 의류와 가구, 향수 등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통하는 분야의 중소 제조업체도 2012년 말 기준으로 195곳이 중국과 홍콩 자본에 팔렸다.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 내각이 외국 투자 유치에 협조적이란 점도 중국의 적극적 투자를 이끄는 요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 자본이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 뒤 빠져나간 미국 자본의 빈 자리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카를로 칼렌다 경제개발부 부장관은 “중국인이 이탈리아 기업을 사러오는 데는 어떤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의 공격적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탈리아 싱크탱크 ‘폴리시 소나’의 설립자 프란체스코 갈리에티는 “유럽이 너무 많이 내주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유럽 자본의 동등한 중국 진출이 가능하도록 중국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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