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이 31일 특허 분쟁 ‘2차 대전’에 들어갔다. 애플이 청구한 손해배상액만 20억달러에 이르지만, 애플의 표적이 삼성이나 돈이 아니라 구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 플랫폼을 둘러싼 애플과 구글 두 거인의 대결이라는 얘기다.
<뉴욕 타임스>는 30일 ‘애플이 삼성과의 전쟁에서 구글을 집중 공격하다’라는 기사에서 “애플이 삼성 갤럭시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 쪽은 △단어 자동 완성 △밀어서 잠금 해제 △스마트폰-피시 동기화 △통합 검색 △데이터 태핑 등 다섯가지 항목에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아이폰 운영체제(iOS)를 베꼈다고 주장한다. 대상 제품은 삼성의 갤럭시S3, 갤럭시 넥서스 등이다.
2년여를 끌어온 1차 소송에서는 3월 초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으로부터 9억2900만달러의 배상 판결(1심)을 끌어냈다. 애플이 별도로 진행하는 이번 2차 소송에서는 휴대전화 모서리 디자인 침해 등 1차 소송 때와 달리 삼성 갤럭시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의 핵심기술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1차 때와 다른 고강도 압박이다.
애플은 31일 새너제이 연방지법의 배심원 선정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2차 소송에서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빈은 1989~92년 애플에서 일한 전력이 있는데, 애플은 루빈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5, 아이패드4 등이 삼성의 특허기술인 무선 동영상 전송 기술과 사진 저장 기술 등 2개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맞섰다. 손해배상액으로는 2200만달러를 청구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31일 “삼성도 애플의 텃세를 의식해 구글 쪽 인사를 증인으로 불러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며 히로시 록하이머 구글 안드로이드 담당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삼성 소송전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제임스 베센 보스턴대학 법학 교수는 “애플이 돈을 원했다면 진작에 타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익도 불투명하다. 평결이 나와도 항소 등으로 소송이 오래 걸린다면, 애플이 이기더라도 삼성은 애플이 문제삼는 특허를 피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 현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은 애플보다 훨씬 높아 역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은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4억대가 넘는 스마트폰을 판매했고 올해는 5억대 돌파를 목표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센 교수는 “애플이 5개의 특허 침해를 들어 안드로이드를 죽이려는 것은 큰 도박”이라며,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의 유훈의 영향을 지적했다. 잡스는 자서전에 “안드로이드가 내 기술을 훔쳤다. 안드로이드를 파괴할 것이다” “(안드로이드를 파괴하기 위한) 핵융합 전쟁” 등을 언급하는 등 구글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애플이 소송전에서 이긴다면 삼성이나 구글한테는 ‘카피캣’(모방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