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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대통령’ 경쟁하는 37년전 여교수와 제자

등록 2013-08-15 20:04수정 2013-08-15 21:09

미 연준 의장 후보, 서머스 vs 옐런
두 사람은 197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한 사람은 거시경제학을 가르치는 서른살의 여교수로, 다른 이는 스물두살의 풋풋한 학생으로.

37년이 지난 지금, 그 두 사람이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재닛 옐런(66) 연준 부의장과 로런스 서머스(58)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연준 의장은 미국 대통령이 조용히 지명하고 상원이 신속히 인준해 주는 게 관례였다. 미국 대통령은 지난 34년간 세명의 연준 의장을 지명했는데, 모두 그렇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내년 1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옐런 부의장과 서머스 전 장관 지지층 사이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백악관이 언론을 통해 서머스 전 의장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내비치자, 민주당 내 진보진영이 반발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54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지난달 말 옐런 부의장을 지명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에 연서명을 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다. 연준 의장뿐 아니라 다른 고위직 정부 인사 임명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 차기 연준 의장을 지명할 예정이다. 그는 최근까지도 서머스 전 장관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런 공개 논쟁에 휘말리자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말 민주당 의원들과 비공식 모임에서 “(서머스와 옐런) 두 사람의 정책 차이를 발견하려면 살라미 소시지를 아주 얇게 잘라야 할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연준 의장 지명을 둘러싼 이번 논쟁에는 두 후보 간의 통화정책과 금융규제에 대한 견해 차이, 월가 유착 여부, 역대 경제팀 이너서클의 이해, 첫 여성 의장 탄생 가능성 등 여러 요인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 특히, 누가 연준 의장이 되느냐에 따라 금융규제 방향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 물밑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 법을 통과시켰으나, 월가 대형 금융기관의 ‘대마불사’ 행태를 규제하는 정책 등 핵심 정책들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 양적완화에 대한 이견 옐런 부의장과 서머스 전 장관은 모두 명성이 자자한 경제학자들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머리가 매우 명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6살에 매사추세츠공대(MIT)에 들어갔고, 40살 이하 경제학자 중에 가장 뛰어난 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노벨 경제학상만큼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1993년에 받았다. 마크 거틀러 뉴욕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서머스는 80년대에 1년에 12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고, 주제도 주가·세금정책·실업 등 다양했다”며 “주로 정책과 관련된 연구에 강했다”고 말했다.

옐런 부의장은 학계에 있을 때 실업과 노동시장을 주로 연구했고, 이론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른바 ‘신 케인스학파 모델’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교수는 “옐런은 복잡한 논쟁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표현하는 재능을 지녔다”고 평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2009년 이후 연준 관리들 중에서 경제 예측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그를 꼽았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남편이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두 사람 모두 경제학계의 학풍에서 보면 범 케인스학파에 속한다. 그래서 경제성장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시장에 맡겨놓기보다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정부 역할의 방법과 규모 등 구체적인 정책에 들어가면 견해 차이가 뚜렷하다. 연준 의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규제 두가지 모두에서 그렇다.

먼저, 통화정책에서 ‘양적 완화’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연준은 장기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위해 달러를 찍어내 매달 85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데, 경제가 성장하고 실업률이 낮아지자 언제 출구 전략을 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서머스 전 장관은 양적 완화 정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정책의 필요성을 수긍하면서도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키리라 우려한다. 그는 지난해 브래드 들롱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분교 교수와 공동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저금리가 자산 버블을 초래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미국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렸는데, 서머스 전 장관이 연준 의장에 지명되면 출구 전략의 실행 시점이 빨라질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반면, 옐런 부의장은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 완화 정책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올해 4월 연설에서 “현 정책은 경기회복에 의미있는 지원자 구실을 해왔다”며 “급속한 신용팽창, 눈에 띄는 레버리지 증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할 만한 자산버블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서머스, 월가 밀착 논란 이보다 더 큰 쟁점은 금융규제에 대한 태도 차이다. 금융규제 강화는 월가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주당 내 진보진영이 서머스 전 장관의 지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부장관과 장관으로 재직하며 금융규제 완화를 주도했다.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반대와,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법’(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강제한 법)의 폐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파생상품 규제 미비는 2008년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1998년 대형 헤지펀드 롱텀캐피털이 파생상품 투자 잘못으로 파산해 미국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일을 계기로 미국 상품선물위원회는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규제를 건의했으나,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과 함께 이를 묵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생상품 규제 미비는 이후 미국 금융기관들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과다 대출을 초래했다.

하버드대 교수-제자로 첫 만남
둘다 정부역할 강조 ‘케인스학파’
통화·금융시장 규제정책 시각차

머리 명석, 자기주장 강한 서머스
“저금리가 자산버블 초래했다”
양적완화 정책에 부정적 태도
무분별 월가자문 ‘도덕성’ 논란

심사숙고, 타인의견 존중 옐런
버냉키와 함께 ‘양적완화 설계자’
2005년 주택버블 경고 선구안
“연준관리 중 예측력 최고” 평가

이 문제와 관련해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10년 4월 <에이비시>(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서머스 부장관한테서 파생상품과 관련해 잘못된 조언을 받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그들의 조언을 들은 게 잘못이었다. 그들은 이 상품들은 매우 비싸고 복잡해 소수의 투자자들만 매입하므로 추가적인 보호나 투명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 조언에서 잘못된 점은 때때로 돈이 많은 사람들도 어리석은 결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서머스 전 장관은 금융위기 이후 견해를 바꿨다. 그는 2008년 의회 산하 금융위기조사위원회에 나와 “파생상품과 관련한 우리의 규제 틀은 명백히 불충분했다”고 인정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금융 규제 강화에는 신중한 편이다.

아울러 서머스 전 장관은 2010년 행정부를 떠난 뒤 월가 금융기관에서 자문활동을 하고 있어 도덕성 논란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그는 씨티그룹, 나스닥, 대형 헤지펀드인 쇼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아왔고, 온라인에서 대출 경매를 하는 렌딩클럽이라는 벤처기업에 자문하며 워싱턴의 규제기관과 적극적으로 만나라고 조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신문은 “그의 재산은 1990년대에는 40만달러 정도였으나, 2009년에는 재산이 700만~3100만달러로 치솟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 옐런, 월가 규제 고삐 조일까 반면에 옐런 부의장에 대해선 금융규제와 관련해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2004년부터 6년간 샌프란시스코 연준 총재로 재직하며 금융기관들이 신용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는 2005년에 주택가격 버블을 경고한 몇 안 되는 관리의 한명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옐런은 이후 연설과 연준 통화정책 회의에서 버블 붕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 위기를 막는 데는 효과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금융위기 직전 파산한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회사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이 그의 관할 지역에 있었다. 그는 2010년 금융위기조사위 청문회에서 “금융기관 대출 규제를 위한 새로운 지침을 워싱턴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지방 연준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역량을 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증권화·신용평가기관·새도우 뱅킹 시스템과 관련한 리스크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일이 벌어질 때까지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털어놔 질문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옐런 부의장은 위기 이후 엄격한 규제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당시 청문회에서 “이 경험이 나로 하여금 이런 일들이 발생할 때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생시킬 더 엄격한 기준과 규정을 옹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융위기가 그를 ‘유순한’ 지방 연준 규제자에서 강한 규제 옹호자로 바꿔놓았다고 전했다.

■ 두 후보 둘러싼 거물들의 경쟁 두 후보의 지명전에는 백악관 및 기존 경제팀 ‘이너서클’과 연준을 중심으로 한 백악관 외부인사들의 경쟁 심리도 얽혀 있다. 이너서클은 클린턴·오바마 행정부 경제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루빈 전 재무장관이 중심이다. 서머스 전 장관과 티머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 제이콥 루 현 재무장관, 지니 스펄링 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 등이 모두 여기 멤버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해온 금융정책의 틀이 바뀔 것을 우려해 서머스 전 장관을 적극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교롭게도 이 이너서클은 모두 남성들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요직인 국무장관은 벌써 세명의 여성 장관을 배출했으나, 연준 의장과 재무장관은 한번도 여성에게 돌아간 적이 없다. 이번에 여성계가 옐런 부의장을 적극적으로 미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9~10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맡은 크리스티나 로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분교 교수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백악관을 떠난 뒤 백악관 생활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항상 있었다. 그러나 급하게 전화를 하거나 모임을 가질 때는 이미 일이 마무리되고 있거나 내가 제외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연준 의장을 선택할 때는 개인적인 성격도 매우 중요한 요인인 것으로 알려진다. 12명의 멤버들의 토론을 거쳐 의견을 모으는 게 주요 의사 결정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협화음이 심하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서머스는 머리는 명석하지만 성질이 급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반면에, 옐런은 전형적인 교수 타입으로 심사숙고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라고 평했다. 손 교수는 서머스 전 장관이 1순위, 옐런 부의장이 2순위라고 하면서도 제3의 선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서머스는 잘 알지만 옐런은 잘 모른다. 그래서 버냉키 현 의장의 재임을 요청할 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몇차례 회견에서 개인적 선호도를 언뜻 내비쳤다. 지난달 24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 때는 물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통화 완화정책에 회의적인 서머스 전 장관에 유리한 말이다. 그런데 지난 9일 백악관 기자회견 때는 고용 확대가 우선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경기 부양에 강조점을 두는 옐런 부의장에 유리한 것이다. 오바마가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방증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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