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대폭락했다. 지난 3월 최고치를 경신한 다우지수와 원자재 등 세계 자산시장이 폭락 도미노 사태를 맞았다. 경기회복 기조가 다시 경기침체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금값은 15일 뉴욕 원자재 시장에서 4월 선물 기준으로 온스당 9.4%, 136.60달러나 떨어져 1360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30년 만에 최대다. 지난 11일 이후 203달러가 떨어져, 1974년 선물거래가 도입된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금값은 지난해 8월 최고값인 온스당 1888달러를 기록한 뒤 하락세로 돌아서, 20% 이상 떨어졌다.
이날 다우지수도 지난해 11월7일 이후 최대폭인 1.8%(265.86)가 떨어져, 14599.20으로 내려앉았다. 원자재 관련 주가 급락세를 이끌었다. 석유값이 배럴당 90달러 이하로 내려갔고, 구리도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석유와 구리는 경기를 반영하는 민감한 원자재다. 시장에 경기회복 둔화에 대한 우려가 널리 퍼졌다는 뜻이다.
지난 12년 동안 500% 넘게 오른 금값이 갑자기 폭락한 것은 거품 폭발, 경기 둔화, 인플레 우려 해소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한 것으로 분석된다. 직접적 계기는 구제금융에 들어간 키프로스 정부가 자금을 마련하려고 금을 내다 팔면서, 다른 국가들도 매도에 나설 것이라는 징후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하락세이던 금값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다.
중국의 저조한 경제지표는 금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에 직격탄을 터뜨렸다. 15일 발표된 중국의 올해 1/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의 7.9%에 못미치는 7.7%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8%를 예상했다. 세계 원자재 시장의 최대 수요자인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감소하리라는 신호다. 8% 미만의 성장률은 중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미국 뉴욕연준이 발표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경제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미국 경제의 둔화 우려를 키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에서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으며 폭등한 금값이 하락하는 데에는 더 근본적 배경이 있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돈풀기와 양적완화에도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 힘을 얻자, 인플레 헷지용으로 주로 매입되던 금의 효용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미국 연준은 최근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축소할 것임을 시사했다. 3차 양적완화와 채권 매입이 더이상 없으리라 예상되고 인플레 우려도 낮아지자, 금값의 거품이 터진 셈이다. 주요 선진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연 2% 미만이고, 세계적으로도 6% 미만이다.
양적완화, 즉 돈풀기에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현상적으로 좋은 것이기는 하나, 경기가 그만큼 죽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돈을 풀어 경기가 회복되면, 부작용으로 인플레가 발생한다. 이번 금값 폭락은 그런 경기침체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40년 동안 금을 거래해왔는데, 지난 이틀 동안 목격한 사태 같은 것은 결코, 결코, 결코 본 적이 없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한 금 투자자의 비명은 이번 금값 폭락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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