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유로 매입”…1주 필요자금 GDP 넘을듯
유럽 부채위기로 오름세…기업 경쟁력 등 추락
브라질·일본 등 자국통화 평가절하 동참 가능성
유럽 부채위기로 오름세…기업 경쟁력 등 추락
브라질·일본 등 자국통화 평가절하 동참 가능성
스위스가 유로화에 대해 사실상 고정환율제 채택을 선언함에 따라, 유로존 위기의 여파가 환율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6일(현지시각) 대 유로화 스위스프랑의 환율이 1.20프랑 이하로 내려갈 때마다 ‘무제한적인 양’으로 유로화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프랑을 유로화 대비 1.2프랑을 제한선으로 하는, 사실상의 고정환율제 시행을 밝힌 것이다. 선진국 중앙은행이 환율 개입선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시장개입은 극히 이례적이다. 중앙은행이 시장과 무제한의 싸움을 벌이겠다는 의지표명으로, 그 실효성과 귀추가 주목된다.
스위스국립은행은 이날 성명을 통해 통화당국의 언사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경하고 단호한 어조로 자국화 절하의지를 보였다. 은행은 “유로화 대비 스위스프랑이 1.20이라는 최저환율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더이상 용인할 수 없다”며 “최대한 결의로 이 최저선을 강제할 것이고 무제한적인 양으로 외환을 매입할 준비되어 있다”고 밝혔다. 은행은 또 “유로화 대비 1.20프랑도 여전히 높은 것이고 계속 절하돼야 하며, 경기전망과 디플레이션 위기에 따라, 더 진전된 조처를 취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스위스프랑은 금융위기와 유럽 부채위기로 인한 달러 및 유로화 약세에 따라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의 매입으로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전후 유로화 대비 약 1.6프랑에서 최근 1.1프랑까지 절상되며,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이에 따라 경쟁력이 떨어진 스위스 기업과 정부는 스위스국립은행에 단호한 조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스위스프랑뿐만 아니라 일본 엔, 브라질 헤알화 등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으로 취급된 통화들은 급격한 가치상승을 겪으며, 자국의 수출부진 등 경기침체와 디플레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스위스의 강력한 시장개입 이후 노르웨이의 크론이 2003년 2월 이후 대 유로화 대비 최고가격을 보이고, 스웨덴 크로나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돈은 안전자산을 찾아 흐르고 있어 각국의 통화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스위스의 환율전쟁 선포에 따라, 일본과 브라질,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은 유럽연합 국가들도 자국통화 절상을 막기위한 환율전쟁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외환전문가들을 인용해 “전면적인 환율전쟁이 확실히 시작됐다”며, 이는 “현재 시장불안으로부터 안전처를 찾는 투자자들의 탈출구를 봉쇄함으로써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스위스의 극약처방이 실효성이 있을 것이지는 의문이다. 성명에서 보인 이례적인 단호함과 결의로 스위스 통화당국은 이제 매일매일 1.20프랑 선을 지키기 위해 개입할 것이 확실하다. 투자자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 가치가 떨어지는 유로화를 매도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날 스위스국립은행의 발표 뒤 유로화는 일순간에 1.10에서 1.22스위스프랑으로 약 10% 가량 폭등했으나, 저지선인 1.20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위스국립은행은 지난해 시장개입을 했다가 100억스위스프랑(약 1170억달러)를 손해보며 포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스위스가 환율방어를 위해서는 하루에 800~1000억스위스프랑을 써야하는데 이는 일주일이면 스위스 국내총생산보다 많을 것이라고 회의적 반응도 있다. 6일 유럽증시에서 그리스 등에 돈이 물린 프랑스 은행주들이 5% 내외의 폭락을 다시 재현해 유동성 위기 조짐까지 보이며, 유럽 부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심화되는 유럽 부채위기로 폭락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유로화에 대해 스위스프랑의 절상을 막겠다는 스위스 당국의 조처는 ‘시장과의 싸움’에 대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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