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독 10%대 하락
디폴트 위험 국가 채권 많아 신용경색 비상
디폴트 위험 국가 채권 많아 신용경색 비상
은행이 다시 위기의 중심에 섰다. 2008년에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전후한 신용경색으로 미국 은행들이 금융위기의 주역을 맡았었는데 이번에는 유럽 은행들이 휘청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세계 증시가 다이빙을 하는 데에는 미국의 실물 지표 악화와 함께 유럽 은행들을 둘러싼 불안한 시각이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주가가 장중 한때 23%나 폭락하며 심상찮은 기류를 대변한 프랑스 2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18일(현지시각) 12%의 하락 폭을 보였다. 영국과 독일 등의 주요 은행들도 10%가 넘는 하락률을 기록했다.
폭락의 일차적 원인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그 명칭은 밝히지 않은 채 한 은행이 5억달러(약 5434억원)를 대출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곧바로 ‘은행간 대출이 막히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민간은행들이 서로 돈을 꿔주지 않을 정도로 금융권의 불안이 높아지고 불신이 팽배해졌다는 말이다. 유럽에 은행이 수천개 있지만, 그중 단 하나가 중앙은행에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투자자들의 심리는 얼어붙었다.
같은 날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유럽 은행 미국 지사들의 자금 상황 점검에 들어갔다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까지 겹치면서 유럽 은행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런 조처는 유럽 은행들의 부실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미국 통화당국이 미국 금융권으로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막으려는 행동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재정위기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대상이 돼왔다. 그리스 등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의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그 은행 또한 부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와 이탈리아 채권을 많이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프랑스 은행들의 주가 폭락이 두드러진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상황보다 은행 문제를 심각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2008년 위기의 재발을 예고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촉발한 당시 위기는 서브프라임 채권을 보유한 투자은행들을 덮쳤고, 부실화되거나 불안을 느낀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중단해 돈줄이 막히는 신용경색으로 이어졌다. 신용경색은 곧 실물경제를 추락시켰다. 은행권이 위기의 매개체이자 기폭제 구실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민간이 발행한 서브프라임 채권이 아니라 국가가 발행한 채권이 사태의 발단이 됐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대형 은행들이 올해 필요한 자금의 90%가량은 확보했지만 아직 800억유로(약 124조원)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럽 주요 은행들은 미국에서도 수십억유로씩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또 유럽 은행들은 미국 등 다른 지역 은행들과도 거래관계로 긴밀히 엮여 있기 때문에 위기의 전파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도 있다.
이런 맥락 때문에 2008년의 기억이 생생한 증시는 은행권과 관련된 소소한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의 금융시장 분석가 마크 폴럭은 “은행의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2008년의) 공포스러운 기억이 되살아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