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폭락 왜
양적완화조처·금리인하 등 부양책 힘들어 ‘이중고’
신용 하락 가능성도 악재로…고용지표는 소폭 개선
양적완화조처·금리인하 등 부양책 힘들어 ‘이중고’
신용 하락 가능성도 악재로…고용지표는 소폭 개선
4일(현지시각) 미국 증시가 2008년 12월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로 폭락한 데는 여러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 불안의 진원지로 지목됐던 미국의 국가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타결됐음에도, 타결 내용 가운데 큰 폭의 정부지출 삭감이 오히려 시장에서 부각됐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의 가장 큰 수단인 정부지출이 삭감되면서, 추가적인 경기침체라는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뒤의 재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슬금슬금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블딥이 닥쳐올 경우, 미국이 더 이상 이를 타개할 뾰족수가 없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웠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미 정책 수단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여서 경기회복을 위해 추가적인 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도 없다.
2조3000억달러에 이르는 두 차례의 양적완화(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이나 통화 발행 등의 수단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는 통화정책) 조처도 시행했지만, 경기 회복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지출 삭감 분위기에서 추가적인 양적완화 조처를 취하기도 힘든 상태다. 여기에 신용평가회사들의 미국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가세했다. 복지정책 축소로 저소득층의 소비가 위축돼 전반적인 소비 감소 가능성도 복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최장 99주간 지급되는 실직자 371만명에 대한 실업수당이 올해 말 끝나게 된다.
지금까지 미국 증시를 그나마 지탱해 온 것은 기업의 수익 증대였다. 그러나 온갖 악재들이 두드러지면서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커지면서 증시를 지탱하는 마지막 버팀목까지 힘을 잃게 만들었다. 여기에 유럽의 부채위기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투자심리는 급속히 냉각됐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질 확률이 33%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최근 며칠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하반기 주식시장에 대한 비관론이 급속도로 퍼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5일 발표된 7월 실업률(9.1%)이 전달에 비해 0.1% 하락하고, 신규 일자리가 11만7000개가량 늘어나는 등 고용 지표가 예상치를 약간 웃돈 것은 시장의 우려를 일부나마 누그러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워싱턴 네이비 야드에서 한 연설에서 7월 실업률 하락 등을 언급하며 “우리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있으며, 상황이 더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실업률이 2009년 6월 이후 두 달을 제외하곤 매월 9% 이상을 상회하는 등 고용시장의 상황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뉴욕 소재 미쓰비시도쿄유에프제이(UFJ)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크리스 럽키는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잔존해 있고, 실업률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여러 해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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