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국 경제의 ‘더블딥’(짧은 경기회복 뒤의 재침체) 공포가 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의 부채 한도 협상에 쏠렸던 투자자들의 눈이 경기 침체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다시 쏠리면서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유럽에서는 재정위기가 다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혼란에 빠졌다. 대서양 양쪽의 우환이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양상이다.

미국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일(현지시각) 2.19% 떨어지자, 3일 한국(-2.59%)과 일본(-2.11%)의 대표 지수들도 폭락 도미노에 깔렸다. 코스피는 이틀 동안 106(4.9%)이나 빠졌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의 증시도 3일(현지시각) 내내 장중 급락세를 보였다. 원-달러 환율도 금·달러 등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다 외국인의 대량 주식매도 영향으로 전날보다 9.60원 오른 1060.40원으로 마감했다. 금값은 1온스(약 31.1g)당 1661달러(약 176만원)를 기록해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세계 증시 폭락은 미국 정부가 부채 협상을 통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피하긴 했지만, 더블딥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때마침 미국 상무부는 6월 소비지출이 전달에 견줘 0.2% 줄었다고 발표해 주가를 내리눌렀다. 미국의 소비지출 감소는 2009년 9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3%에 그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미국의 성장률이 이 정도에 그친 것은 미국 경제가 상승 탄력을 잃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경기 전망이라는 문제가 부채 협상에 가려져 있다가 다시 전면에 대두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부채 협상에서 10년간 지출을 2조1000억달러(약 2225조원) 이상 줄이기로 한 것은 오히려 경기 전망에 부정적인 요소로 거론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거꾸로 지출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경기부양책이 없다는 점도 악재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와 피치는 2일 미국의 신용도를 최고 등급(AAA)으로 유지한다면서도 앞으로 강등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잠복한 듯하던 유럽 재정위기도 재발했다. 이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각각 6.25%, 6.45%로 1999년 유로화 출범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유로존의 3·4위 경제대국인 이들 두 나라의 재정위기는 유로존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20%로 높은 축인데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의 위기 해결 능력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은 정부 부채 비율이 64.5%로 독일(74.3%)보다도 낮지만 지방정부의 부실과 부동산 거품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4400억유로(약 661조원)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으로는 두 나라를 구제하기 어렵다. 그리스에 대한 1·2차 구제금융 규모만 2200억유로인데, 스페인의 경제 규모는 지금까지 구제금융 대열에 합류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세 나라를 합친 것보다 2배 가까이 크다. 여기에 키프로스도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유럽 전체가 ‘디폴트 지대’로 변할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본영 기자, 한광덕 선임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