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두체제 깨야” 목청 높여
‘미국 편향적’ 문제 제기도
‘미국 편향적’ 문제 제기도
유럽 국가들이 국제신용평가회사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다. 무디스가 포르투갈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강등하며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안에 발목을 잡은 것이 직접적 계기이지만, 신평회사들의 ‘신용’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아마데우 알타파지 유럽연합 집행위 대변인은 6일(현지시각) “무디스 결정의 시점은 의문을 자아낼 뿐 아니라 (포르투갈의) 실적과 전혀 궤를 같이 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설적 시나리오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들의 행동의 적절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디스는 4일 민간투자자들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의 차환을 포함하는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안이 타결될 경우, 민간투자자들이 포르투갈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주된 이유로 들어 포르투갈의 신용등급을 무려 4단계나 강등했다. 현재 경제 실적 보다는 외부의 미래 상황에 대한 가설에 기초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유럽연합 쪽은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안에 대해 신평회사들이 번번히 재뿌리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을 보여왔다. 독일을 주축으로 한 유럽연합 국가들은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 때 민간투자자, 즉 대형 기관투자자들도 그리스 국채를 신규 국채로 전환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이 한 투자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투자자들은 고통분담을 완강히 거부해왔다. 신평회사들은 어떠한 형식으로든 민간투자자들의 비자발적 손실 부담은 사실상 그리스의 디폴트(지급불능)라는 입장을 보이며, 민간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프랑스 정부와 은행들이 주축이 돼 마련한 타협안이 제출되며 추가 구제금융안 타결은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무디스는 이 합의안을 이유로 포르투갈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강등하는 ‘성동격서’ 전술을 펴며, 다시 합의안에 재뿌리기를 했다고 유럽 국가들은 보고 있다. 스탠더드앤푸어스는 이 구제금융안이 그리스를 사실상 디폴트에 처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예 못박았다.
이날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신평회사들의 과두체제를 깨야한다”며 그 영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 피치라는 3대 신평회사들의 횡포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신평회사들 중 어느 하나도 유럽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며 “이는 유럽의 특정 문제를 평가할 때 일부 편향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신평회사들이 미국 편향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까지 나서 “유럽연합 집행위,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은 스스로 판단할 자유를 놓지 않을 것”이라며, 신평회사들의 판단에 휘둘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시장에서 절대적 권위를 휘두르는 신평회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해 우량 등급을 부여하는 등, 결국 주고객들의 이익에 봉사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신평회사들은 민간 기관투자자들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며 주수입을 올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스 추가 구제금융안에서 민간투자자들이 고통을 분담하면 ‘디폴트’라며, 결국 독일 등의 납세자 돈으로 민간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하라는 것이 신평회사들의 논리이다. <비비시>(BBC)는 신평회사들의 이런 논리를 ‘암흑의 예술’이라고 지칭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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