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선 “금본위제 부활했다”
금융위기와 금값 상승은 중앙은행들의 자산 구성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을 꽁꽁 숨겨놓는 경향이 되살아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 중앙은행들의 금 매도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유럽 중앙은행금협약에 가입한 중앙은행들의 금 매도가 최근 1년간 6.2t에 그쳤고, 이전 1년간보다 96%나 감소한 것이다. 이런 판매량은 1999년 중앙은행금협약 도입 이후 최저치다.
금은 1980년대 초만 해도 세계 중앙은행들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몫이 60%를 웃돌았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장기적 안정세에 접어들고 이자를 취할 수 있는 국채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0년대 들어 중앙은행들이 지닌 금의 비중은 10% 안팎으로 떨어지고, 외화자산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유럽 중앙은행들의 금 매도가 497t까지 늘었다. 금의 시대는 영영 저문 것처럼 보였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는 이런 국면을 뒤집었다. 부도 때 휴짓조각이 될 수밖에 없는 채권의 인기는 금세 시들고 금이 옛 영광을 되찾기 시작했다. 세계경제는 지난해 하반기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그리스 재정위기 등이 채권의 위험성을 계속 환기시켰다. 금융시장에서는 그래도 안전하다는 달러 채권으로 돈이 몰리는 가운데, 그보다 더 안전한 금의 ‘황금시대’가 열렸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량은 현재 3만t가량으로, 금본위제가 살아있던 60년 전 수준과 비슷하다. 금 보유량 증가를 지상 목표로 삼은 유럽 근대 초기의 중상주의(중금주의)가 부활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중앙은행들의 닫힌 금고는 자연스럽게 금값의 천정부지 상승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캐피털의 귀금속담당 이사 조너선 스폴은 “(자산별 중요도에 대한) 심리적 태도가 확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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