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취약한 다른 나라로 위기 확산 차단 나서
임금동결·증세…“시민희생 강요” 수만명 시위
임금동결·증세…“시민희생 강요” 수만명 시위
부도 위기로 내몰렸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협상 타결로 그리스는 물론 유로존 16개국 전체가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그리스발 위기가 재정 건전성이 떨어지는 국가들로 전이돼 유럽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번 합의의 배경이 됐다.
그러나 정부 긴축안이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하면서 그리스 채무 위기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도 구제금융 조건으로 특정국의 사회·경제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제통화기금이 도마에 올랐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합의 사실을 발표하면서 “큰 희생”을 강조한 것은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말한 것이다. 재정을 건전화하려면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스 정부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재정적자 규모를 2014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3% 미만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2012년까지 지출을 300억유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최근, 트로이전쟁에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10년이나 걸린 그리스신화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언급하며 시민들이 겪어야 할 고통을 얘기하기도 했다.
긴축안의 첫번째 희생양은 일자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이다. 임금 동결과 연금 삭감, 일자리 불안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 재무부는 2일 연간 상여금 상한을 1000유로로 정하고, 월급 총액이 3000유로가 넘는 공무원은 상여금을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금도 대폭 깎인다. 또 판매세 최고세율이 현재의 21%에서 23%로 오른다.
이번 긴축안은 발표 하루 전부터 거센 반발을 만났다. 노동절인 1일 수도 아테네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1만7000여명이 참가한 아테네의 거리시위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화염병과 최루탄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시민들은 긴축안이 서민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안은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항복을 뜻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테네 집회에 나온 한 시민은 “국제통화기금은 런던에 자산을 가지고 있고 비싼 차를 모는 부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만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노동자층이 30년간 싸워 얻어낸 사회보장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반감은 공무원 부패와 탈세가 재정 부실화의 원인이라는 인식과 닿아 있다. <뉴욕 타임스>는 아테네 교외 부유층 거주지역에서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고 과세당국에 인정한 주민이 324명에 불과하지만, 위성사진으로는 수영장 1만6974개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20~30%로 미국(7.8%)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민들의 반발은 채무 위기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노동조합들은 오는 5일 총파업과 시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야니스 파팡고풀로스 그리스노동자연맹 의장은 “그들이 우리를 물기 시작하면 사회적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 정부가 계획대로 지원을 받더라도 재정 건전성 확보가 쉽지 않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불가피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리스의 저명한 정치분석가 타미스 미카스는 “결국 디폴트로 갈 것이며, 구제금융은 단지 거기까지 가는 기간만 연장시킬 것”이라고 <업저버>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그리스 정부가 계획대로 지원을 받더라도 재정 건전성 확보가 쉽지 않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불가피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리스의 저명한 정치분석가 타미스 미카스는 “결국 디폴트로 갈 것이며, 구제금융은 단지 거기까지 가는 기간만 연장시킬 것”이라고 <업저버>에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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