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5일 밤 호세 로드리게스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헤지펀드 규제안에 찬성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규제안은 16일 유럽연합(EU) 경제·재무이사회(ECOFIN)에서 표결 직전까지 갔지만 영국의 반대로 또다시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 이사회 순번 의장국을 맞고 있는 스페인은 부담을 느껴 의장국 권한으로 표결 직전에 헤지펀드 규제안을 안건에서 빼버렸다.
유럽연합에서 헤지펀드를 규제하자는 목소리는 2008년 초부터 나왔다. 최근 골드만삭스 등 월가 대형 은행들이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 등을 통해 그리스 국채와 유로화를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유럽연합이 마련한 규제안 초안은 유럽연합 밖에 본부를 둔 헤지펀드라 할지라도 유럽연합 내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역내에 반드시 등록을 하고 거래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뼈대다. 부채규모에 일정한 제한도 둔다.
그러나 유럽연합 내 헤지펀드의 80%가 본부를 두고 있는 영국은 강력히 반대했다. 영국은 헤지펀드 규제안을 저지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로비를 벌여왔으며 스웨덴 등 동조국도 확보한 상태였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브라운 영국 총리는 적어도 5월 총선 전까지 헤지펀드 규제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헤지펀드 규제를 주장해온 프랑스와 독일은 실망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스페인은 의장국을 맡고 있는 6월까지 되도록 처리한다는 방침이어서 규제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편, 유럽연합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재정 적자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 “필요시” 개별 회원국이 양자 계약 형태로 차관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직접적인 구제금융은 아니지만 이번 합의로 시장은 안심하는 분위기다. 신용평가기관인 에스앤피(S&P)는 그리스를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위한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제외하고 현재 등급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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