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이탈리아 비아레조에서 열린 축제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모양으로 생긴 인형이 퍼레이드 대열에 섞여 있다. 이 축제에선 이탈리아나 세계 유명 인사의 캐릭터 모양으로 만든 인형들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비아레조/AFP 연합뉴스
증권사도 은행 계열사면 고위험투자 불가
프 지지…한국은 “우리 갈 길 있다” 고집
11월 ‘G20’회의서 의제 가능성…처지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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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강력한 은행규제 방안(‘오바마 안’)을 놓고 우리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그동안 대형화와 상업은행·투자은행 겸업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식 금융기관을 ‘롤 모델’로 놓고 금융정책을 추진해왔는데, 정작 미국에선 이런 흐름을 완전히 뒤집겠다는 규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바마 안이 국제적 금융공조 방안의 하나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올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은 정부로서는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 오바마 개혁안 핵심 이슈로 은행의 고위험투자를 금지하는 오바마 안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난해부터 활발히 논의된 금융규제 강화 흐름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추진을 표명한 만큼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지난주 열린 다보스포럼의 화두도 오바마 안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이미 공개적인 지지를 밝히고 나섰다. 오는 6월 캐나다, 11월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도 주요 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방안이 미국에서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미국 거대 금융자본의 로비를 뚫고 의회를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주요국들의 합의를 거쳐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사안이 아닌 것 역시 분명하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오바마 안은 ‘포퓰리스트 정책’이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온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 상원의 존 매케인 의원(공화당)과 마리아 캔트웰 의원(민주당)은 이보다 더 강력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완전한 분리’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 대통령은 찬성, 장관은 반대? 우리 정부는 참여정부 때부터 금융기관의 대형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융합, 미국식 투자은행 육성 등을 내걸고 금융정책을 추진해왔다.
오바마 안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우리 금융 현실과는 큰 관계가 없다’며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대형화와 상업은행·투자은행 통합으로 방향을 잡아 도착하자마자 미국은 다른 길로 떠나는 모습이지만 우리는 우리 갈 길이 있고 현재 금융정책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간단치 않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G20 의장국인데 이 의제를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며 “G20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인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와 정책 방향이 다른데 적극 동조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다보스포럼 특별연설에서 “금융기관의 ‘대마불사’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논의와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이라며 오바마 안에 어정쩡하게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 글로벌 미아 될라 만약 오바마 안이 국제합의를 거쳐 국제규범으로 자리잡으면 문제는 더 꼬인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오바마 안이 국제 표준이 되면, 반대방향으로 달려간 우리 은행들은 외국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신용등급을 낮게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플레이어’는커녕 ‘글로벌 미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바마 안을 계기로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금융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대형화·겸업화의 위험성을 고민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못 가본 길이니 계속 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반드시 자기 손이 화상을 입어봐야 뜨거운 것을 알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신 연구위원은 “우리만의 금융산업 발전단계가 있기 때문에 선진국을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다”면서도 “은행 계열 증권사는 비은행계열 증권사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부분은 우리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오바마 은행 개혁안과 한국 금융체계
오바마의 은행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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