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외환거래소의 한 직원이 26일 엔화의 달러화 대비 환율을 보여주는 전자게시판 앞에서 외환 중개를 하고 있다. 이날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4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 블룸버그 연합뉴스
26일 달러당 86.45엔에 거래 마쳐…한달새 6.8% 상승
수출 타격에 더블딥 우려도…정부 개입 가능성 시사
수출 타격에 더블딥 우려도…정부 개입 가능성 시사
1985년 9월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인 선진5개국(G5) 재무장관들은 그 뒤 몇 십년간 세계경제를 크게 바꿔놓을 역사적인 합의를 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가치를 떨어뜨리고 일본 엔과 독일 마르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공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가 있던 그날 1달러에 238.54엔이던 엔화가치는 이후 거침없이 상승(환율 하락)해 10년 뒤인 1995년 4월19일 달러당 80.35엔까지 오르고서야 방향을 바꿨다. 엔화 강세는 일본에는 ‘거품경제와 그 후유증’을, 한국엔 이른바 ‘3저 호황’(낮은 국제금리, 저유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화가치에 따른 경기호황)을 안겨줬다.
최근 엔화가치가 1995년 기록을 경신할 듯한 기세로 다시 치솟고 있다. 2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84.81엔까지 떨어져, 95년 중반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엔화 급등은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이 “무질서한 움직임에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강한 구두개입을 하면서 진정돼 86.47엔으로 마감했다. 전날 이미 86.45엔으로 거래를 마치며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엔화는 강세행진을 6거래일째 이어갔다. 엔화의 최근 한달 사이 상승률은 6.8%나 된다.
85년의 엔화 강세는 선진국간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은 시장의 선택이다. 투자자들은 달러를 파는 대신 엔을 대안으로 사들이고 있다. 미국의 초저금리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으로 런던은행간 6개월짜리 달러금리는 엔화금리보다 낮아졌다. 게다가 일본은 물가가 하락세여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로 보면 ‘엔’ 쪽이 훨씬 금리가 높다. 유럽 은행들에 타격을 줄 두바이 사태는 엔을 ‘유로’에 견줘서도 강세로 이끌고 있다.
일본 수출기업들에는 엔화 강세가 재앙이다. 자동차·가전 업종 수출기업들은 내년 3월까지 이어지는 ‘하반기’에 엔-달러 환율을 평균 90엔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엔화 강세는 기업실적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10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달에 견줘 2.2% 떨어진 상태에서 엔화 강세는 수입물가를 더욱 떨어뜨리게 된다. 디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서 7~9월 분기에 큰 폭 성장한 일본 경제가 더블딥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엔화 강세가 쉽게 멈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우노 다이스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정부가) 내수확대를 국제공약으로 밝혀놓고 있어, 시장 개입을 결단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정부는 그동안 ‘엔화 강세가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뒤늦게 정부가 엔화 강세 저지를 위한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친대기업적인 자민당 정권 아래서도 최근 5년간 외환시장 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시장 참가자들은 실제 개입 가능성을 의심한다. 사실 국제 공조 없이 일본이 혼자 힘으로 시장 흐름을 바꾸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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