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추이
배럴당 70달러 7개월만에 100% ↑…실물경제는 바닥
경제위기 이후 지난 연말 배럴당 33달러까지 내려앉았던 국제유가가 이제 68달러 선을 회복해 70달러 선에 다가서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을 뺀 미국·일본·독일·영국 등 세계 5대 경제국이 -6~-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실물경제가 바닥권을 맴돌고 있지만, 유가는 7개월 만에 100% 넘게 상승했다. 도대체 유가상승 배경엔 뭐가 있는 걸까?
‘유가 미스터리’의 비밀을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이 아닌 투기에서 찾는 이들이 적잖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8일 <뉴욕 타임스>에 “이번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투기가 (석유) 가격을 들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 재고가 크게 느는데도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투기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봤다.
원유 선물시장은 투기적 유가 흐름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실제 석유와 가스의 상업적 거래와 상관없는 원유 선물 거래가 전체의 5분의 1(20%)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석유의 가격 흐름에 돈을 걸어 수익을 내는 헤지펀드와 상업은행의 상장지수펀드(ETF)용 거래가 다수다.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지수에 몰려든 돈은 지난 5년 사이 130억달러에서 2600억달러로 20배나 증가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달러 가치의 하락과 인플레이션에 맞선 헤지(안전장치) 수단으로 원유 선물시장의 효용성이 커지면서, 돈이 몰리는 것도 유가 상승을 부채질한다.
유가 상승을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의 수요 증가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6월에 펴낸 세계석유수급 보고서에서 “유가가 올랐던 지난 1분기의 1일 평균 전세계 석유 공급량은 수요를 20만배럴 초과했다”고 밝혔다. 신흥시장의 수요가 조금 늘었더라도, 다른 나라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소비 감소폭이 훨씬 컸던 셈이다.
세계경제의 회복 조짐도 최근의 급격한 유가 상승을 설명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는 못 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올 세계 석유 소비량은 전년보다 1일 평균 160만배럴씩 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석유 재고는 1분기에 2억7천만배럴로 역대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경기가 서서히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수요보다 공급이 큰 상황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데도 유가는 올들어 100% 넘게 올랐고, 지난 한달 동안엔 가격 등락폭이 30%가 넘는 변덕스러움을 보였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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