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뒤 학생 질문에 답하는 등 ‘친절한 행보’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의 벤 버냉키(55)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서 앨런 그린스펀이나 폴 볼커 등 전임자들과 같은 고집불통의 카리스마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준이 수조달러를 투입하며 금융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버냉키 의장 나름의 솔직하고 투명한 행보가 미국민들 사이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3월 소비가 1.1% 감소하며 예상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 14일 버냉키 의장은 애틀랜타의 한 대학 강연에서 미국 경제에 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밝혔다. 연설문은 하루 전에 사전배포됐고, 이날 연설 뒤 대학생들과 마주 앉아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됐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시비에스>(CBS)의 시사프로그램인 ‘60분’에 출연하는 등 연준 의장으로선 예외적으로 국민들을 향해 쉽게 경제를 설명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 그린스펀이나 볼커 전 의장이 말을 아껴 금융시장이 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신경을 쓰게 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버냉키 의장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앙은행이 보다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평가했다.
버냉키는 레임덕 연준 의장이다. 내년 1월30일 그의 임기가 끝나면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후임을 맡는다는 얘기가 지난해 말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전통대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일주일에 한번씩 점심식사를 겸한 의논을 하고, 서머스 위원장과도 최근 두차례 백악관 브리핑에 함께하는 등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백악관은 재임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 노력하는 버냉키의 이런 투명한 행보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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