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조세피난처 공방에
UBS등 소송·예금인출 큰타격
UBS등 소송·예금인출 큰타격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내실을 자랑하던 스위스 경제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스위스 경제의 버팀목인 은행이 ‘비밀주의’와 ‘조세 피난처’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와 경기부양책으로 심각한 재정적자를 안게 된 미국과 유럽 정부는 세수 확보를 위해, ‘비밀주의’를 무기로 미국과 유럽 부유층의 자산을 유치해온 스위스 은행들을 겨냥하고 있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유비에스(UBS)가 폭풍의 핵심에 서 있다.
미국 법무부는 유비에스가 스위스에 자산을 예치하면 국세청에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 부유층 자산 200억달러를 유치했다며 형사 기소 방침을 밝혔고, 지난달 유비에스는 기소를 면하기 위해 250명의 고객 명단을 제출하기로 합의했다가 고객들의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미국 상원은 4일 유비에스가 어떻게 미국 납세자들의 탈세를 도왔는지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했고, 칼 레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철저히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유비에스의 ‘비밀주의’가 흔들리자, 고객들이 돈을 빼내고 있다. 2008년 유비에스의 글로벌자산관리 서비스에서 1050억달러(전체 예치금의 8%)가 빠져나갔다고 <뉴욕 타임스>가 4일 전했다. 유비에스는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로 53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예치된 자금도 2007년말 2조달러에서 2008년말 1조4천억달러로 줄었다.
‘비밀주의’를 유지하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은 스위스 은행의 명성에 큰 타격을 주면서, 스위스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유비에스의 총 자산은 2조달러로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네 배에 이른다. 스위스 은행 전체의 자산은 국내총생산의 6.8배이고, 금융부문은 국내총생산의 12.5%를 차지한다. 미국의 8.5%보다도 훨씬 높다. 은행들이 휘청거리면 스위스 경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04~2007 매년 3% 수준이던 경제성장률은 2008년 4분기 -0.6%로 떨어졌다.
제네바 국제금융은행연구센터의 찰스 위플로즈 국장은 <뉴욕 타임스>에 “스위스 금융산업이 위축된다면, 분명 스위스의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간은행장은 최근 스위스 언론에 “고객 보호를 위한 비밀주의가 없어진다면 스위스 경제의 축인 금융산업이 최대 절반 정도로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도 ‘포위망’을 조이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일 스위스가 오는 4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G20 정상회담에서 금융기관들이 조세회피 지역에서 거래한 정보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3개국은 8일 룩셈부르크에서 긴급 재무장관 모임을 열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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