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1일 미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업체인 마이크론의 제품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중요 정보 인프라 설비 사업자에게 이 회사 제품의 구매를 금지했다. 마이크론 홍보담당자는 “결과를 분석해 다음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 당국과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 버지니아주 머내서스에 있는 이 회사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의 모습. 머내서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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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21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전격 제재한다고 발표하면서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중 전략 경쟁이 본격적인 ‘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주요 7개국(G7)이 모여 자신에 대한 새 접근법을 공개한 정상회의 마지막 날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안을 공개하며 이 조처가 미국을 향한 보복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이 조처를 내놓은 바로 다음날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고 나서, 처절한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중 사이에서 힘겨운 결정에 내몰리게 됐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이날 저녁 8시께 누리집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사이버보안법을 근거로 한 심사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되는 등 마이크론이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에 대해 이 회사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31일 심사를 시작한 뒤 주요 7개국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 맞춰 구매 중지 명령을 내렸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 2017년 시행된 사이버보안법에 따른 안전 심사를 해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조처를 내놓으며 중국이 제시한 논리는 “우리 나라의 중요 정보 인프라 공급망에 중대한 안전상의 위험”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중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상무부는 앞선 2019년 5월 5세대 통신(5G)의 강자였던 중국 기업 화웨이가 자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이 회사에 대한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엔티티 리스트’(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또 2022년 10월엔 미국의 국가안보에 해를 끼친다며 일본·네덜란드 등 동맹국까지 규합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이 중국의 첨단 산업을 타격하기 위해 제시한 것과 같은 논리를 들어 미국에 보복 조처를 취한 것이다.
나아가 이 조처는 주요 7개국이 20일 공동선언을 통해 중국에 대한 새 접근법으로 제시한 ‘디리스킹’(위험완화)을 거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7일 미국은 “디커플링(관계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을 추구하고 있다며 “우리의 수출 규제는 군사적인 균형을 기울어지게 할 수 있는 기술에 매우 좁게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요 7개국도 공동선언에서 “우리 접근은 중국을 해하거나 중국의 경제적 진보나 발전을 좌절시키려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의 핵심 공급망에서 과도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중국 기업을 규제하는 논리로 국가안보를 제시하는 미국을 향해 중국도 같은 논리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본격 보복에 나서면서 한국의 고민 또한 깊어지게 됐다. 미국 반도체 기업 가운데 대중 비중이 높은 기업은 퀄컴(64%)·인텔(27%)·에이엠디(22%) 등이지만,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10.8%·33.1억달러)을 표적으로 삼았다. 대체 불가능한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을 피해 삼성과 에스케이(SK)하이닉스라는 강력한 ‘대체 구입처’가 있는 마이크론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23일 미국 정부가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대신 반도체를 팔지 않게 해달라고 한국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산시성 시안에서 열리는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시안/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강하게 경계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이런 행위는 자신의 패권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라며 “시장 경제 원칙과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엄중하게 위반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행태를 결연히 반대하며 유관 국가 정부와 기업이 중국과 함께 다자무역 시스템,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관 국가와 기업은 한국과 삼성전자 등을 이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요구를 따르면 중국의 보복을 각오해야 하고, 거부하면 동맹 관계가 훼손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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