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의 환전소 앞에서 남성이 터키리라를 입에 물고 있다. 튀르키예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80.2%를 기록했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튀르키예(터키)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떨고 있는 서민들이 소비를 서두른 역설적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주요국들과 정반대 길을 가고 있는 튀르키예의 ‘나 홀로 역주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튀르키예 통계청은 7일 올해 2분기 튀르키예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었다고 밝혔다. 1분기(7.5% 성장)보다 소폭 늘어난 결과다.
경제의 단기 성장 흐름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국민들의 ‘공포 소비’였다. 가구 소비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2.5%나 늘었다. 살인적인 물가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민들이 소비를 서두른 것이다.
이런 ‘공포 소비’를 부추긴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0.2%나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2%였던 것과 비교하면 살인적인 수준이다. 일각에선 이조차 낮게 집계된 것으로 실제로는 180%에 다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인플레이션에 겁먹은 소비자들이 튀르키예 경제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며 구매를 앞당기고 있다”고 짚었다.
물가가 치솟은 핵심 이유는 정부가 고집스레 유지하고 있는 완화 정책 때문이다. 40여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6~7월 두달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끌어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7월 11년 만에 금리를 올리는 결단을 내렸다. 한국도 올해 들어서만 다섯 차례 기준금리(현재 2.5%)를 인상했다.
그럼에도 튀르키예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지난 8월에도 기준금리를 14%에서 13%로 1%포인트나 내리는 엽기적 행보를 보였다. 이들은 금리인하의 이유로 “공업생산의 증가와 우호적인 고용 환경의 유지”를 꼽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주요국 가운데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내린 적이 있는 나라는 러시아·중국 외에 튀르키예가 유일하다.
튀르키예 정부가 무리한 통화정책을 이어가는 이유는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 때문이다. ‘스트롱맨’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를 낮게 유지해 튀르키예 경제를 지탱하는 자동차·가전 부문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크게 오르며 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특히, 서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교통비와 식료품 물가는 세자릿수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이스탄불 경제연구소가 8월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 연합의 지지율은 38%로 야당 연합(42%)에 뒤처져 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튀르키예 정부가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 대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재무부와 시중은행이 대출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기업에 신용대출을 제공한다. 통신은 “대출로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에르도안 정부가 오랫동안 선호한 정책”이라며 “이전에도 이 정책으로 만들어진 신규 대출이 경제를 과열시키고 경상수지를 부풀리면서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튀르키예 경제가 하반기엔 고꾸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튀르키예의 주요 수출 시장인 유럽 경제가 휘청이고 있어 성장 동력이 꺾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제학자 셀바 바하르 바지키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인플레이션이 소비에 타격을 주고 유럽의 성장 둔화가 수출을 꺾으면서 하반기 튀르키예 경제는 상당히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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