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온수 시스템과 관련 부품을 소개하는 프랑스 테르마도르(Thermador)그룹의 홍보 영상. 이 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창사 이후 줄곧 직원의 임금을 공개했다. 테르마도르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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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이 흐르는 회의실. 각 임직원의 이름과 나이, 근속연수, 월급, 연봉이 적힌 표가 게시판에 걸린다. 테르마도르(Thermador)그룹은 계열사 18곳에 임직원 712명을 두고 있다. 계열사들은 1년에 한 번 모든 직원의 임금을 공개한다. 1968년부터 이어온 기업 전통이다. “창업주인 기 뱅상은 정직, 효율, 신뢰, 투명성을 기업의 가치로 내세웠다. 이들 가치가 모두에게 이롭다고 생각했다”고 그룹 최고경영자(CEO) 기욤 로뱅은 말했다. 테르마도르그룹은 건축·산업용 용액 순환펌프를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기업이다.
임직원의 임금을 공개하는 기업은 또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편집 업체인 뤼카(Lucca)의 임직원 320명은 회사 내부 프로그램으로 다른 직원의 임금을 찾아볼 수 있다. 근속연수가 3년 넘은 직원은 여러 동료가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연봉을 제시하고 회사 쪽과 협상한다.
2018년 개업한 은행인 신(Shine) 역시 임금표를 공개한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직무와 직급에 따라 임금을 정한다. 기본급여에 더해 경력과 부양가족 수(1명당 2500유로, 최대 3명)에 따라 상여금도 준다. 회사에 나와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출근수당을 지급하고, 재택근무하는 사람에게는 재택근무비를 환급해준다. 이 회사 인사부장 마틸드 칼레드는 “소극적이거나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워하는 직원이 임금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임금 공개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은 연봉 협상에 서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엘리즈 프날바이셰는 “프랑스에서 임직원의 임금을 공개하는 회사가 극소수이지만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급여체계가 복잡해지고 개별화하면서 임금 이해도가 떨어졌다.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수준이 어떤지 알기 어려워졌다. 임금 공개는 이 변화에 맞물려 생긴 현상이다.”
최근 들어 임금을 공개하는 기업이 많아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20년부터 프랑스 상장기업은 최고경영자의 임금과 나머지 직원의 평균임금(임금 총액을 직원 수로 나눈 값), 그리고 중위임금(임금의 중간값)을 비교한 ‘공정성 지수’를 기업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 직원이 50명 이상인 회사는 여성과 남성 직원의 임금 격차를 표시한 ‘성평등 지수’를 발표해야 한다.
회사의 투명성은 잘못된 인식을 막고 직원의 사기를 북돋운다. 마틸드 칼레드는 “임금 공개로 직원들이 어떤 직급에 도달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그 수준에 맞는 임금은 얼마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신 은행은 낮은 퇴사율을 자랑한다. 테르마도르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이다.
임금 공개를 임금체계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방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겉모습이나 말솜씨에 혹해 높은 연봉을 주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기욤 로뱅은 “임금을 공개하면 관리자에게 큰 책임이 따른다. 부서 직원들 사이에 연봉 차이가 있으면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채용이나 임금 인상 자리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파리-소르본대학 경영연구소(IAE)의 클로틸드 코롱 교수(인사관리학)도 “임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회사는 체계적일 수밖에 없다”며 “그런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정당한 처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 공개는 임금 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그것이 원래 목적이 아니어도) 가져올 수 있다. 신 은행에서 최저임금에 견준 최고임금 배율은 5가 되지 않는다. 테르마도르의 최고경영자 임금은 나머지 직원의 평균임금과 중위임금에 견줘 각각 4.6배, 5.39배 수준이다. 프랑스 대표 상장회사에서 이 수치는 각각 41배, 56배다.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업이 임금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클로틸드 코롱 교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여성이 연봉을 낮게 부르는 경향”을 꼽는다. 뤼카에서 고객 응대를 책임지는 마리아델라이드 그루벨은 “다른 직원이 얼마 받고 일하는지 알면 자기 연봉이 어느 수준인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임금 조정과 관련해 최근 연 위원회에서 여직원은 남직원보다 평균 4% 넘게 연봉을 올렸다.
반면 엘리즈 프날바이셰는 “임금 공개가 협상에 소극적인 직원에게 외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금 공개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성은 대체로 임금을 올려달라고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그러기를 꺼린다. 그래서 남성 동료가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 알아도 이를 연봉 협상에서 잘 이용하지 않는다.
2022년 6월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 노동자들이 공항터미널 밖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게다가 똑같은 일을 하는 남녀 노동자의 임금을 비교할 수 있게 해도, 그것이 실제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동일 노동에도 차이 나는 임금을 받는 것은 전체 임금 성차별 사례의 28.5%에 불과하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해도 주로 시간제로 일하는 탓에 남성보다 돈을 적게 받는다. 여성의 시간제 노동을 종일제로 환산하면 남성보다 임금이 16.8% 적다.
남녀 임금 차별 사례의 68%는 직업 자체에서 비롯한다. 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직업의 노동가치가 남성이 월등히 많은 직업에 견줘 낮게 책정된 게 문제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의 연맹사무처장 보리스 플라지는 “학사 학위가 있는 간호사의 급여가 일반 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적다”고 말했다.
마틸드 칼레드는 “다른 종류의 임금 격차가 여전히 있다”며 “다른 방식으로 그 격차를 없애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 은행은 채용을 원하는 여성의 비율을 전체의 50%까지 올리기 위해 ‘여성개발자 육성학교’와 협력하고 있다. 그 덕택에 여성 관리자 수는 1년6개월 만에 30%에서 40%로 늘었다.
회사가 아무리 좋은 취지로 임직원 임금을 공개해도 그것의 악용까지 막을 수는 없다. 클로틸드 코롱은 “여성이 주로 맡는 노동은 가치가 낮은 노동이라며 임금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임금표가 이용될 수 있다. ‘여성적인’ 역량을 선천적인 것으로 치부하려 한다. 예를 들어 공감력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역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에마 두키니는 “임금 공개로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맞는다”며 “하지만 그것이 항상 낮은 임금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성노동자의 높은 연봉을 여성노동자 수준으로 낮추는 사례가 대다수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성별이 아닌 직무와 직급별로 나눠 표시하고, 이를 회사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회사와 비교되거나 나쁜 평판을 얻는 게 두려워 회사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기업만 예외적으로 시행하는 임금 공개를 모든 기업이 하면 어떨까?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모든 직원의 임금을 공개했다가 납득할 수 없는 임금 격차에 분개한 노동자들이 반기를 들 수 있어서다. 기욤 로뱅은 “임금을 공개하기 전 부당한 차별을 시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명성은 임금표를 내걸기만 하면 지켜지지만, 그 표의 공정성을 지키려면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직원 임금을 모두가 알게 하면 퇴사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회사들도 있다. 임금을 공개하는 회사는 그 만족도가 높다. 임금 공개로 임금 불평등도 해소된다. 그래도 그 흐름에 올라탈 회사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의무가 아닌 이상.
마리옹 페리에 Marion Perr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2년 5월호(제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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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최혜민 위원